전시 개요와 의도
아우크스부르크 교구의 디오체산박물관 성 아프라(St. Afra)는 2025년 가을, 새로운 특별전 「Schwarz sehen」(검정을 본다는 것) 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향후 이어질 시리즈 「Farbe bekennen」(색을 고백하다, 혹은 색을 드러내다) 의 서막을 여는 자리로, 색채를 단순한 시각적 현상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문화, 종교, 사회적 경험과 긴밀히 연결된 상징적 코드로 다룬다. 그 첫 번째 주제는 검정(Black)이다.
검정은 색채 중에서도 가장 양가적인 의미를 품은 색으로, 애도와 죽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며, 단절과 부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수도자의 절제와 신앙의 깊이를 표현한다. 전시는 바로 이러한 검정의 다층적 의미를 종교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 관람자가 이를 체험적으로 탐구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전시의 세 구역
- Das Große Schwarze – ‘큰 검정’
첫 번째 구역은 ‘작은 검정’이라 불리는 ‘리틀 블랙 드레스(LBD)’의 관용어에서 출발해, 검은 의복이 지닌 문화적 정체성을 다룬다. 여기서는 사제의 성직복, 수도자의 수도복, 군인이나 관리의 제복 등이 전시된다. 동일한 색채 아래서도 그것이 지닌 사회적 맥락은 전혀 다르다. 성직복의 검정은 내적 절제와 신앙적 헌신을 상징하지만, 제복의 검정은 권위와 질서의 표상으로 기능한다. 이를 통해 전시는 검정이 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규정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박물관 직원인 토마스 키슬링거 박사는 큐레이터로서 미디어 담당자들을 새로운 특별전 “Seeing Black”으로 안내했습니다. (사진: 니콜라스 슈날/pba)
- Katholisch ist gut sterben – 죽음을 향한 검정의 신학
두 번째 구역은 죽음과 애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검정이 기독교적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어 왔는지를 탐구한다. 묵주, 장례 의식 도구, 애도의 예술품들이 전시되며, 검정은 단순한 슬픔의 표지가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과 부활의 약속과도 연결된다. 여기서 강조되는 점은 검정이 죽음을 ‘끝’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신앙의 빛 속에서 ‘전환점’으로 이해되도록 하는 색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섹션은 검정이 지닌 종교적 차원에서의 위로와 초월성을 드러낸다.

베로니카 융 박사는 장례 잔치(장례식이라고도 함)가 애도하는 공동체에 미치는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 Sonnenuntergang – 정치와 의례의 검정
마지막 구역은 검정이 지닌 정치적·제의적 상징을 보여준다. 특히 1559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거행된 황제 카를 5세의 장례식을 중심으로, 제국 장례 의례에서 검정이 차지한 의미가 조명된다. 장례 행렬에 사용된 관, 검, 의장품 등은 단순한 의식 도구를 넘어 권력의 종말과 계승을 상징하는 정치적 색채를 띠었다. 여기서 검정은 단순히 슬픔을 드러내는 색이 아니라, 황제권의 권위와 제국의 질서를 새롭게 각인시키는 매개로 작동했다.
색채사적 의미
「Schwarz sehen」은 단순히 검정이라는 색을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다. 이는 색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사회의 질서, 개인의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과 맞물려 왔는지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검정은 인간의 감각을 넘어선 문화적 텍스트로 해석되며, 이 전시는 그러한 텍스트를 관람객이 직접 읽어내도록 안내한다.
또한 앞으로 이어질 금색 전시 「Das ist Gold wert」와 함께, 색채를 중심으로 종교적 상징성과 사회적 의미를 통합적으로 조명하는 새로운 색채사 연구의 장을 열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문화적 가치가 크다.
체험적 요소와 교육적 장치
이번 전시는 단순한 유물 전시를 넘어 참여적이고 교육적인 전시 연출을 지향한다. 관람객은 비디오 인터뷰를 통해 ‘검정을 입는 사람들’의 실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포토박스에서는 자신이 검은 옷을 입은 모습을 기록하고 성찰할 수 있다. 어린이 관람자를 위한 별도의 미션북이 제공되는데, 까마귀 캐릭터 ‘Corvus’가 아이들을 전시장 곳곳으로 안내하며 색채 체험을 유도한다. 이는 전시가 특정 연령층에 국한되지 않고, 세대 간 색채 경험의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출처 : bistum-augsburg.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