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의 깃털은 단순한 시각적 신호를 넘어 생리적·생태적 기능을 내포한 복합 구조물이다. 최근 Biology Letters에 게재된 스페인 연구진의 논문은 그중 색소가 깃털 무게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규명하며, 색채와 비행 역학의 연계성을 새롭게 조명했다. 이 연구는 물총새(Alcedo atthis), 황금독수리(Aquila chrysaetos), 홍관조(Pyrrhula pyrrhula) 등 19종의 새에서 채취한 109개의 깃털을 대상으로 수행되었으며, 색소 제거 전후의 무게 변화를 정밀 측정하는 화학적 분석을 적용했다.
연구 결과, 깃털 전체 질량 중 색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약 22%로 나타났으며, 가장 높은 경우에도 25%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색소 유형별 질량 차이는 뚜렷했다. 검정 및 갈색 계열을 형성하는 유멜라닌(eumelanin)은 붉거나 밝은 색을 나타내는 페오멜라닌(pheomelanin)보다 상대적으로 무거웠다. 이 미세한 무게 차이는 곧 비행 효율성 및 에너지 소비와 직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색소의 종류와 함량은 단순히 외형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라, 비행에 필요한 물리적 부담을 좌우하는 기능적 변수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발견은 진화적 해석을 요구한다. 새의 깃털 색은 포식자 회피, 번식 성공, 사회적 신호 등 다양한 선택 압력에 의해 형성되지만, 이번 연구는 그 과정에 비행 역학이라는 물리적 제약이 추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설원 환경에서 활동하는 눈올빼미(Bubo scandiacus)는 색소가 거의 없는 흰 깃털을 통해 보온성을 유지하면서도 불필요한 중량을 최소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장거리 이동을 하는 철새의 경우, 에너지 효율성을 위해 상대적으로 색소 함량이 낮은, 즉 가벼운 깃털을 선택적으로 진화시켰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본 연구는 조류 색채 연구에 새로운 층위를 제공한다. 그간 깃털의 색은 주로 미적·행동적 측면에서 해석되었으나, 이번 결과는 색이 생리적 비용과 물리적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색은 단순한 미학의 언어가 아니라, 생존 전략과 진화의 논리로 읽힐 수 있는 코드인 셈이다. 향후 이 연구가 더 다양한 종과 서식지, 기후 조건을 대상으로 확장된다면, 조류의 색채 다양성은 단순히 유전적 우연이 아니라 에너지 경제와 환경 적응의 총합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phy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