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ti‑layer network analysis of ACG color semantic hierarchies in digital cultural communication
이 논문은 디지털 문화 콘텐츠에서 색채가 어떤 방식으로 전파되고 의미화 되는지를 탐구한다. 연구진은 특히 ACG라 불리는 애니메이션·만화·게임 문화권에서 색이 단순히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집단적 의미를 생성하고 확산시키는 매개체라는 점에 주목했다. 지금까지는 디지털 문화 속 색채가 주로 디자이너의 직관이나 경험에 의해 다루어져 왔는데, 이 논문은 이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 대상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연구는 색채 인식의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먼저 지각적 차원에서는 인간이 시각적으로 색을 인지하는 본능적 반응을 고려한다. 여기에는 트레이스먼의 ‘특징 통합 이론’이 바탕이 된다. 그다음 연상적 차원에서는 색이 기능이나 맥락과 맺는 관계, 즉 어떤 색이 특정한 상황이나 이미지와 연결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는 깁슨의 생태 지각 이론에 기반한 접근이다. 마지막으로 상징적 차원에서는 색이 문화적 기호로 자리 잡으며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연구진은 이렇게 세 가지 층위를 계층적 네트워크로 구축하고, 서로의 관계망 속에서 색채 의미가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살폈다.
데이터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샤오홍슈와 웨이보에서 수집되었다. 2024년 1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애니메이션 색상”, “ACG+컬러”와 같은 키워드로 모은 3만 8천여 건의 게시글이 분석 대상이 되었다. 이 방대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색채 의미의 네트워크를 세 계층별로 구축했다.
분석 결과는 흥미로운 구조적 패턴을 드러냈다. 지각에서 연상, 그리고 상징으로 올라갈수록 네트워크의 노드 수는 줄어드는데, 동시에 중심성은 오히려 강화된다. 다시 말해, 상징적 층위로 갈수록 소수의 색이 더 큰 힘을 발휘하며 의미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 분석에서 색의 위치는 전파력과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지각 계층에서 색의 PageRank 점수와 실제 사용 빈도 간 상관계수는 무려 0.991에 달해, 단순하고 직관적인 색일수록 더 널리, 더 빠르게 확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a 위상구조 차이 레이더 차트, b 중심성 집중도 추세, c 커뮤니티 조직 특성 비교, d 계층적 차이 통계적 검증 결과.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계층 간을 연결하는 브리징 노드의 존재다. 연구진은 총 1,709개의 브리징 노드를 확인했는데, 이는 서로 다른 색채 공동체를 이어주며 의미 확산을 촉진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이는 색채 의미가 단순히 위계적으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 네트워크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층 네트워크 결합 관계 측정 결과: a 교차 계층 연결 강도 분포, b 브리징 노드 네트워크 위치 분석, c 심볼 전이 경로 효율성 비교, d 결합 관계 종합 측정.

제품 색상 연상 측정 결과: a 제품 카테고리 분포, b 연상 강도 분석, c 인지 계층 사용 비교, d PMI 값 분포 특성.
이 논문의 의의는 단순히 색채를 문화적으로 분석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지 심리학, 생태 지각 이론, 문화 기호학이라는 세 가지 이론적 전통을 하나의 분석 틀 속에 통합했다는 점에서 학문적 기여가 크다. 또한 색채 의미를 네트워크라는 복잡계 과학의 언어로 정량화함으로써,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논의되던 개념을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연구진은 나아가 이러한 분석이 문화 콘텐츠 디자인에도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특정 색상이 지각 차원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성향이나, 상징적 층위에서 강한 지배력을 가지는 성향은 실제 디자인 전략 수립에 있어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또한 계층을 연결하는 색의 매개적 역할은 새로운 문화적 상징을 창출하거나 세계 시장에서 색채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결국 이 연구는 색채를 단순히 ‘보기 좋은 요소’가 아니라,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움직이는 구조적 힘으로 파악한다. 앞으로 다국어 환경이나 신경과학적 기법을 결합한 후속 연구가 이어진다면, 색채 인식과 의미 전파의 인과 관계를 더 깊이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디자인 연구뿐 아니라, 디지털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출처 : www.na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