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에서 색은 공간과 현실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 Carlos Cruz-Diez
빛과 색채의 거장,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Carols Cruz-Diez)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진행되는 RGB, 세기의 컬러들 전시가 9월 1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최된다.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예술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크루즈 디에즈의 작품들은 예술 속 색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RGB 색들과 사람의 눈이 색을 인지하는 원리를 활용한 작품 속에서 관람객들은 환상적이고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 초입에는 <색 포화(Chromosaturation)>공간이 등장한다.
흰색의 가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각 벽면에 R(빨강), G(초록), B(파랑) 세 색의 조명이 비친다. 1965년 처음 고안된 이 작품은 단색으로 이루어진 각각의 공간 속에서 새로운 색을 발견하거나, 순간 색이 사라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도슨트 해설가의 설명에 따라 우선 빨간색 벽을 가만히 응시했다. 선명했던 붉은빛이 시야에 적응되니 차차 연분홍빛으로 연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설명에 따라 파란색 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내에 따라 다시 붉은 벽으로 눈길을 보내니 처음 볼 때처럼 다시 강렬한 붉은 색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빛을 인지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과학적 원리를 활용해 초현실적 공간을 구현하였다.
다음 공간은 <평면 작품(Bidimensional Artworks)>으로 구성된 곳이다.
빛과 색에 대한 크루즈 디에즈의 연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평면 인쇄 작품 12점이 전시되어 있다. 멀리서 바라본 작품들은 빨강, 노랑, 주황, 하양, 초록, 파랑 등등의 다채로운 색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다가가 바로 앞에서 작품을 살펴보면 작품이 빨강, 초록, 파랑, 검정으로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에는 원색으로 존재하지만, 표면에 반사된 색들은 관람객의 눈에 빛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혼합되거나 사라지면서 다양한 색들의 조합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크루즈 디에즈는 이런 시각적 인식을 완벽하게 공간에 구현하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정교하게 계산하고 모듈화하였다고 한다. 전시장 곳곳에는 작업 과정이 담긴 VCR 영상이 송출되었는데, 다양한 색들을 배치되어 있다.
마지막 공간은 <색 간섭 환경(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을 표현한 전시이다.
빛의 스펙트럼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송출에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표현되는 영상들은 평면작품에서 감상했던 것처럼, 빛이 담고 있는 색들의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관객의 옷차림에 따라 색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공간에 마련된 구형 조형물들을 이리저리 굴려보며 착시 효과를 더욱 실감 나게 체험할 수도 있어 마치 체험형 전시 같다는 생각도 드는 공간이다. 전시의 끝에서는 크루즈 디에즈가 직접 개발한 디지털 인터렉티브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다. 일종의 소프트웨어인 이 프로그램에서 관객은 직접 툴을 활용해 자신만의 색과 패턴을 만들어 볼 수 있다.
‘RGB, 세기의 컬러들’ 스스로를 ‘과학자의 학문을 적용하는 예술가’라고 묘사하기도 한 크루즈 디에즈의 특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전시이다. 단순히 여러 색을 배열한 것이 아니라 색들의 조합이 인간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까지 계산하며 완성된 작품들은 섬세한 실험 결과이면서 심도 있는 예술품이다.
출처 : www.art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