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센(Gießen)에 위치한 대학병원에서는 조금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과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병원 복도에 색채를 활용한 예술작품들이 걸렸다. 이 전시는 단지 ‘장식’이 아니라, 색의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다. 기센 대학교 병원은 세 명의 지역 예술가를 초청해, 병원 예배당으로 향하는 복도에 그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 전시는 ‘치유하는 색(Heilende Farben)’이라는 주제로, 색이 병원 일상에서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UKG_Colour_Eminusk_gross__4c © 다그마르 클라인

UKG_Paint_on_felt_Scho_n_4c © 다그마 클라인

UKG_Farbe_Ru_ck_flur_010_4c © 다그마 클라인

안드레아스 뤽: 색과 형태에 대한 탐색

첫 번째 작가는 안드레아스 뤽(Andreas Rück)이다. 그는 과거에 작업했던 그림들을 새롭게 다듬어 전시에 출품했다. 예전에는 굵고 강한 색의 줄무늬가 특징이었지만, 이번에는 훨씬 부드럽고 자유로운 느낌의 그림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구체적인 사물을 그리기보다는 손의 움직임과 감정을 표현한 듯한 제스처적인 그림이 많다. 전시장 입구에는 다양한 색의 플라스틱 조각들이 전시돼 있는데, 이는 그가 수집한 물건들로, 색채와 구조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카챠 에미누스크: 떠다니는 듯한 색의 조화

두 번째 작가는 카챠 에미누스크(Katja Eminusk)다. 그녀는 2025년에 완성한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투명한 종이 위에 색을 겹겹이 쌓고, 기하학적인 모양을 배치한 그녀의 작품은 마치 색이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부드럽고 세밀한 색의 조합이 특징이며, 그녀의 콜라주와 드로잉은 관람객의 눈과 마음을 조용히 사로잡는다. 작품 하나하나가 소리 없이 말을 거는 듯하며, 병원 복도라는 긴장된 공간에 차분함과 부드러운 리듬감을 불어넣는다.

폴커 쇤할스: 색의 흐름과 질감의 실험

세 번째 작가는 폴커 쇤할스(Volker Schönhals)로, 그는 색과 재료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펠트 천 위에 색을 덧칠한 작품은 눈길을 끈다. 표면은 거칠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며, 겹겹이 칠해진 색이 예상치 못한 모양으로 드러난다.

일부 작품은 색이 수직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 색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표현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감정과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려 있는 작품들이다.

색의 힘, 병원에서도 필요하다

이 전시는 단순히 미술 전시가 아니라, 의료 환경에서 색이 갖는 역할을 실험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는 ‘힐링 아키텍처(Healing Architecture)’, 즉 치유를 돕는 건축이나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색과 빛, 자연의 요소들이 병원 공간에 도입되면 환자의 심리적 안정과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기센 병원도 이런 흐름에 맞춰, 색을 활용한 예술작품을 도입했다. 환자와 보호자, 병원을 방문한 누구든지 복도를 지나며 잠시 멈춰 서서 색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일상 속 치유의 가능성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예술은 병원에서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벽에 걸린 그림이 때로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고, 무채색의 공간 속에서 색의 울림은 작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기센 대학병원의 이번 전시는 예술과 의료의 만남, 그리고 색의 치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누구든지 이 복도를 지나가며, 짧은 순간이라도 ‘예술과 색’이 전하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출처 : www.giessener-allgemeine.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