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여름 시즌 샤넬 컬렉션은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의 유리 천정 아래에서 펼쳐졌다. 이번 쇼의 공간 연출은 단순히 패션을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라, 빛과 색이 서로를 반사하며 만들어내는 조형적 환경으로 설계되었다. 디자이너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는 샤넬의 전통적인 절제된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우주의 질서’라는 확장된 공간 개념으로 변환시켰다.
무대 중앙에는 깊고 어두운 반사면의 런웨이가 놓였고, 그 위로 크기와 밝기가 다른 구형 조형물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이 조형물들은 스스로 빛을 발하거나 주변의 조명을 받아 반사하면서, 마치 밤하늘의 행성처럼 공간 속을 떠다니는 듯한 인상을 만들었다. 관객이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배치는 달리 보였고, 런웨이의 반사면은 그 움직임을 그대로 비추며 현실과 반영이 중첩된 시각적 층위를 형성했다.
이번 무대의 색채 구성은 샤넬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무채색 팔레트를 기반으로 한다. 흰색과 회색, 그리고 검정이 전체 구조의 균형을 잡으며, 여기에 금속성의 은색과 크롬 톤이 더해졌다. 이 금속적 색채는 미래적 감각을 부여하면서도, 기존의 클래식한 조형미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일부 구형 조형물에는 붉은빛, 청록빛, 그리고 주황빛이 더해져 있었다. 이러한 포인트 컬러들은 무채색 공간 속에서 시각적 리듬과 감정의 온도차를 조율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조명 시스템은 이 무대의 핵심적 요소였다. 조형물 내부에 삽입된 광원은 낮은 색온도의 백색광(약 4500K~5500K)을 사용해, 차가운 인공광이 아닌 부드럽고 확산된 자연광의 느낌을 구현했다. 조명의 각도와 세기, 그리고 반사율의 차이에 따라 색의 경계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따라서 색은 고정된 표면 위에 존재하지 않고, 빛의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시간에 따라 재구성되는 시각적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런웨이 바닥의 재질 또한 색채 공간을 정의하는 중요한 매개였다. 고광택의 반사 표면은 상부 조형물의 빛을 그대로 투사하며, 실제의 색과 반사된 색이 겹쳐지는 복합적인 색채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색을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공간적 현상으로 체험하게 하는 감각적 프레임을 제공한다. 샤넬의 색채는 여기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으로 존재한다.
전체 공간의 구성은 조형물, 조명, 반사면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독립적으로 놓인 것이 아니라, 빛의 흐름을 중심으로 통합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색은 형태에 종속되지 않고, 빛의 경로와 시점의 변화에 따라 움직인다. 관객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색은 미묘하게 다른 농도와 온도로 바뀌며 새로운 공간감을 형성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넘어, 색채가 시간성과 관점성에 의해 구성되는 동적 구조(dynamic structure) 임을 보여준다.
감성적으로 보았을 때, 이 무대의 색채 체계는 샤넬이 강조해 온 절제와 명료함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기술 감각을 수용한 형태로 읽힌다. 무채색은 브랜드의 전통과 정체성을 상징하며, 포인트 컬러와 금속광은 그 위에 덧입혀진 시대의 언어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이번 무대의 색채는 전통과 실험, 질서와 유동성의 공존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과다.
샤넬 2026 S/S 컬렉션의 무대는 색을 ‘표시’하는 장소가 아니라, 색이 ‘발생’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빛, 반사, 물질의 상호작용 속에서 색은 물리적 존재를 넘어 감각적 현상으로 전환되었다. 이는 샤넬이 구축해 온 “단순함 속의 복합성”이라는 미학을 공간적 언어로 재해석한 시도이며, 패션과 색채디자인이 만나는 접점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감각 실험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 Designboom. (2025, Oct 7). Constellation of floating orbs illuminates Chanel SS26 show at Paris Grand Palais. Image captured from ‘The CHANEL Spring Summer 2026 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