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설명: 마르샬 레스 (Martial Raysse) , Made in Japan – La grande odalisque (세부), 1964, 아크릴 페인트, 유리, 파리, 합성 섬유 트리밍, 캔버스에 장착된 사진, 130 x 97cm, 퐁피두센터,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 Centre de création industrielle © Centre Pompidou, MNAM-CCI/Philippe Migeat/Dist. 그랑팔레Rmn © Adagp, 파리, 2025]
Couleurs ! – Chefs‑d’œuvre du Centre Pompidou
모나코 그리말디 포룸에서 열린 전시 〈Couleurs! – 퐁피두 센터 명작전〉은 색채를 단순히 회화의 표면적 요소로 다루지 않는다. 이번 전시는 색을 주제이자 매개로 삼아 20세기 모더니즘과 동시대 미술의 거장들을 다시 읽어내며, 감각 전체를 통합하는 새로운 전시 언어를 제안한다.
공간은 일곱 개의 단색 영역으로 구획되었다. 각각의 영역은 특정 색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회화와 조각, 디자인 오브제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들이 색의 스펙트럼을 몸소 드러낸다. 예를 들어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의 색채 추상은 순수 색의 리듬을 보여주고, 바실리 칸딘스키(Vassily Kandinsky)의 화면은 음악적 구조로서의 색채를 탐구한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등, 각각의 작가가 색을 통해 구축한 미적 세계가 단색 공간 속에서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대화하는 형식으로 배치된다.
마르샬 레스 (Martial Raysse)의 Made in Japan – La grande odalisque
앵그르의 고전 누드 〈그랑 오달리스크〉를 사진으로 차용해, 아크릴·합성 섬유·유리·곤충 등을 덧입힌 팝아트적 패러디다.
여기서 색채는 핵심 장치다. 원작의 은은한 살결 대신 네온처럼 강렬한 인공색이 인체를 덮으며, 전통적 아름다움은 광고·소비 이미지로 바뀐다. “Made in Japan”이라는 제목은 당시 대량생산품의 맥락을 담아, 고전 미술을 현대 소비사회 속 상품화된 이미지로 전환시킨다.
즉, 이 작품은 색채를 통해 예술과 소비, 고전과 현대, 자연과 인공의 충돌을 드러낸다.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 블랙(Black)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단순한 도형을 넘어, 회화의 근본적 의미를 전복하려는 선언이었다. 검정은 빛을 흡수해 다른 색을 지우는 색으로, 회화가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환영을 철저히 거부한다. 블랙 공간에서 말레비치는 색의 부재를 통해 오히려 절대적 순수성을 제시했다. 이는 무(無)의 색, 동시에 모든 색을 품은 근원으로서 검정을 성찰하게 만든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십자가(검은색), 1915, 캔버스에 유채, 퐁피두 센터, 국립현대미술관 © 퐁피두 센터, MNAM-CCI/Hélène Mauri/Dist. GrandPalaisRmn, 퍼블릭 도메인
칸딘스키(Vassily Kandinsky) – 블루(Blue)
칸딘스키에게 파랑은 가장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색이었다. 깊고 어두운 파랑은 인간의 내면을 우주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밝은 파랑은 하늘의 가벼움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추상 회화에서 파랑은 음악적 구조와 결합해, 색이 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블루 공간은 관람자에게 차분하면서도 영적인 고양감을 제공한다.

바실리 칸딘스키, 스카이 블루, 1940, 캔버스에 유채, 퐁피두 센터, 국립현대미술관 © 퐁피두 센터, MNAM-CCI/베르트랑 프레보/Dist. GrandPalaisRmn, 퍼블릭 도메인
앤디 워홀(Andy Warhol) – 레드(Red)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에서 붉은색은 소비사회와 대중문화의 과잉을 상징한다. 그는 코카콜라 병, 캠벨 수프 캔, 스타의 얼굴을 강렬한 레드로 반복 인쇄했다. 이 레드는 욕망과 자극, 그리고 폭력성까지 동시에 내포한다. 워홀의 레드 공간은 현대 자본주의의 에너지를 색으로 응축한 장이며, 붉은색이 지닌 매혹과 불안을 동시에 드러낸다.

앤디 워홀, 빅 일렉트릭 체어, 1967-1968, 캔버스에 실크스크린 잉크와 아크릴 물감, 퐁피두 센터, 국립현대미술관 © 퐁피두 센터, MNAM-CCI/MNAM 사진 기록 서비스/Dist.GrandPalaisRmn © 앤디 워홀 시각예술재단 / Adagp, 파리, 2025 라이선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 그린(Green)
베이컨의 화면에서 초록은 단순한 자연의 색이 아니다. 탁하고 병적인 초록은 인체의 고통과 왜곡을 강조한다. 그의 초상화나 인물화 배경에 깔린 그린은 육체를 부식시키는 듯한 불안과 공포를 전달한다. 베이컨의 초록은 생명의 상징이라기보다, 생명이 파괴되는 순간을 기록하는 색이다. 이는 그린 공간을 불안한 심리적 실험실로 만든다.

프란시스 베이컨, 풍경 속 반 고흐, 1957, 캔버스에 유채, 퐁피두 센터, 현대 미술관 ©Agathe Hakoun/Connaissance des Arts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 화이트(White)
아르데코 양식의 냉철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렘피카의 화이트는 순결보다는 세련된 냉혹함을 담고 있다. 그녀의 여성 초상은 흰 피부와 단단한 조형성을 통해 대리석 같은 차가운 미를 연출한다. 화이트는 순수성보다는 근대 도시 여성의 차갑고도 독립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며, 20세기 초반의 모던한 이상을 상징한다.

타마라 드 렘피카, 《성찬가》, 1929, 캔버스에 유채, 퐁피두 센터, 국립현대미술관 © 퐁피두 센터, MNAM-CCI/재클린 하이드/Dist. GrandPalaisRmn © 타마라 드 렘피카 에스테이트, LLC / Adagp, 파리, 2025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 옐로우(Yellow)

피에르 보나르, 미모사 스튜디오, 1939-1946, 캔버스에 유채, 퐁피두 센터, 국립현대미술관 © 퐁피두 센터, MNAM-CCI/베르트랑 프레보/Dist. GrandPalaisRmn, 퍼블릭 도메인
보나르의 회화는 따뜻한 노란빛으로 가득하다. 햇살이 스며든 실내, 일상적 풍경, 사소한 사물은 노란색을 통해 빛과 생명력을 얻는다. 보나르의 옐로우는 감각적 친밀함과 서정성을 불러일으키며, 인간의 삶을 감싸는 빛의 상징으로 작동한다. 옐로우 공간은 밝고도 감각적인 따뜻함으로 관람자의 감정을 환기시킨다.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 – 핑크(Pink)
거스턴의 후기 회화에서 핑크는 단순히 달콤하거나 부드러운 색이 아니다. 핑크 배경 속에 등장하는 두툼한 신발, 담배, 후드 인물 등은 기괴하고 불편하다. 그는 핑크를 통해 미국 사회의 모순과 개인의 불안을 드러냈다. 이 핑크는 아이러니하게도 귀여움과 폭력, 천진함과 냉소가 뒤섞인 색으로 작동한다. 핑크 공간은 달콤함 속에 숨어 있는 불안을 색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필립 거스턴, <침대에서>, 1971, 캔버스에 유채, 퐁피두 센터, 국립현대미술관 © 퐁피두 센터, MNAM-CCI/필립 미제/Dist. GrandPalaisRmn © 필립 거스턴 유산
이 일곱 색은 단순히 스펙트럼의 분할이 아니라, 각각의 작가가 색을 통해 구축한 세계관을 대변한다. 블랙은 부재, 블루는 정신, 레드는 욕망, 그린은 고통, 화이트는 냉철함, 옐로우는 생명, 핑크는 아이러니로 읽힌다. 전시는 색채를 통해 서로 다른 미학과 시대정신을 연결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색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고 경험하게 한다.
이 전시의 독창성은 시각적 체험에 머물지 않고 청각과 후각을 결합한 점에 있다. 작곡가 로케 리바스(Roque Rivas)가 IRCAM과 협력해 제작한 사운드 설치는 색의 진동과 울림을 소리로 번역한다. 동시에 향기 전문가 알렉시스 다디에(Alexis Dadier)가 프라고나르(Fragonard)와 함께 개발한 향은 공간마다 색의 분위기를 후각으로 전달한다. 관람자는 그림을 ‘본다’라는 전통적 경험을 넘어, 색의 향기를 맡고, 색의 울림을 듣는 다층적 경험을 하게 된다. 색은 이처럼 감각 간 경계를 넘나드는 총체적 매개체로 자리 잡는다.
전시는 또한 디자인 오브제를 함께 배치했다. 론 아라드(Ron Arad), 장 프루베(Jean Prouvé),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의 작품은 생활 속에서 색이 가지는 기능적·상징적 차원을 보여준다. 이는 색이 회화적 실험을 넘어, 일상적 오브제와 건축, 가구 디자인까지 확장되는 문화적 언어임을 드러낸다.
총 연출은 윌리엄 샤틀랭(William Chatelain)이 담당했으며, 설치는 마리옹 메일랑데르(Marion Mailaender)가 이끌었다. 그들은 색을 단순히 벽면의 배경으로 쓰지 않고,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색채적 무대로 만들어냈다. 이 무대 위에서 색은 작품을 해석하는 코드이자, 감각을 일깨우는 장치로 작동한다.
〈Couleurs!〉는 결국 색이 단순히 물질의 성질이 아니라, 인간 경험의 핵심적 매개임을 강조한다. 눈으로 보는 색, 귀로 듣는 색, 코로 맡는 색. 이 모든 감각이 하나로 얽히며, 색채는 ‘보이는 것’에서 ‘체험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는 색채 인문학적 성찰과 함께, 21세기 전시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지평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출처 : www.connaissancedesa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