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분류하는 기술에서 색을 말하는 언어로
색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빨강, 파랑, 초록을 구별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색을 보고, 그 색에 이름을 붙이고, 다시 그 이름을 상황에 맞게 조정한다. 같은 색이라도 혼자 놓여 있을 때는 “파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비슷한 색들이 함께 놓이면 “남색”, “청록”, “회색빛 파랑”처럼 더 섬세한 표현이 필요해진다. 색 이름은 색 자체의 물리적 속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주변 색과의 관계, 말하는 사람의 의도, 듣는 사람의 이해 가능성 속에서 선택된다.
최근 공개된 논문 「Modeling Human-Like Color Naming Behavior in Context」는 이 문제를 인공지능의 색채 언어 학습과 연결해 다룬다. 이 연구의 관심은 AI가 색을 얼마나 정확히 구분하는가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AI가 인간처럼 색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가이다. 즉, 색을 숫자나 좌표로 처리하는 AI가 아니라, 색을 언어로 말하고 소통하는 AI를 모델링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연구진은 AI들이 일종의 색 맞히기 게임을 하도록 했다. 한 AI가 목표 색을 보고 “green” 같은 색 이름을 말하면, 다른 AI는 그 단어만 듣고 여러 색 중에서 어떤 것이 목표 색인지 골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AI는 단순히 색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색 이름을 사용하는 법을 익힌다. 인간이 대화 속에서 색을 설명하고 조정하듯, AI도 의사소통 상황 안에서 색 이름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논문이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AI가 색 이름을 꽤 정확히 사용할 수 있음에도, 그 색 이름이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색채 범주를 이루지는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존 실험에서 AI들은 목표 색을 맞히는 데는 비교적 성공했다. 그러나 같은 이름으로 묶은 색들이 인간의 색채 범주처럼 자연스럽게 모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인간이 “green”이라고 부르는 색들은 색공간 안에서 대체로 하나의 이어진 영역을 이루지만, AI가 “green”이라고 부른 색들은 여기저기 흩어진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다.
논문은 이런 상태를 비볼록적(non-convex) 색채 범주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같은 색 이름 아래 묶인 색들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색 무리로 모이지 않고, 색공간 안에서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다는 뜻이다. AI 입장에서는 그 이름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인간이 보기에는 그 범주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이 차이는 색 이름이 단순한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인간의 지각 구조와 언어 습관이 함께 만든 체계라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줄이기 위해 두 가지 조건을 실험했다. 첫째는 드물게 등장하는 색 이름을 더 자주 학습시키는 방법이다. 실제 색 이름 데이터에는 자주 쓰이는 말과 드물게 쓰이는 말이 함께 들어 있다. “green”이나 “blue”처럼 흔한 이름은 AI가 쉽게 배우지만, “aqua”나 “magenta”처럼 상대적으로 덜 쓰이는 이름은 충분히 학습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연구진은 드문 색 이름이 학습 과정에서 더 자주 등장하도록 조정했다. 이를 통해 AI가 일부 기본 색 이름에만 의존하지 않고, 더 다양한 색 이름을 익히도록 한 것이다.
둘째는 한 명의 상대와만 소통하지 않고, 여러 상대와 색 이름을 주고받게 하는 방법이다. 한 AI가 늘 같은 AI하고만 대화한다면, 둘 사이에서만 통하는 사적인 약속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여러 AI와 소통해야 한다면, 특정 상대에게만 통하는 표현보다 더 일반적이고 안정적인 색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연구 결과도 이 방향을 뒷받침했다. 드문 색 이름을 적절히 더 학습시키면 AI가 사용하는 색 이름의 폭이 넓어졌고, 여러 상대와 상호작용하면 색채 범주가 더 응집적이고 인간의 체계에 가까운 형태를 보였다.
다만 더 많이 학습한다고 해서 항상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드문 색 이름을 지나치게 많이 늘리면 오히려 색 이름이 과도하게 세분화되어 색채 범주가 흩어질 수 있었다. 논문은 이 지점을 ‘너무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은 적절한 균형’의 문제로 설명한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색채 명명 체계는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넣었을 때가 아니라, 적절한 학습 균형과 다양한 소통 조건이 함께 마련되었을 때 나타났다.
이 연구는 AI의 색채 학습을 기술적 문제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색 이름을 어떻게 배우고 사용하는지를 되묻게 한다. 인간도 색 이름을 혼자 익히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 공간, 대화, 문화 속에서 색 이름을 배운다. 아이가 “파랑”과 “하늘색”을 구분하고, 디자이너가 “차가운 회색”과 “따뜻한 회색”을 구분하며, 소비자가 “아이보리”와 “크림”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과정은 모두 사회적으로 학습된 색채 언어의 결과다.
색 이름은 고정된 표준어이면서 동시에 흔들리는 감각의 언어다. 같은 색이라도 패션에서는 “샴페인”이라 불리고, 인테리어에서는 “웜 베이지”라 불리며, 디지털 화면에서는 특정 RGB 값으로 표시된다. 색은 숫자로 기록될 수 있지만, 색의 의미는 언제나 사용되는 맥락 속에서 달라진다. 그래서 AI가 색 이름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색상표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색을 분류하고, 말하고, 공유해온 방식을 기계가 어떻게 모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결국 이 논문이 보여주는 핵심은 분명하다. AI가 인간처럼 색을 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데이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색 이름은 지각, 언어, 맥락, 상호작용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안정된 체계가 된다. AI의 색채 명명 연구는 기술의 발전을 설명하는 동시에, 색채가 인간에게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색은 눈으로 보는 대상이지만, 그 이름은 언제나 사회 속에서 배운다.
참고문헌: Zhang, Y., Ürker, E., Verhoef, T., Boleda, G., & Bisazza, A. (2026). Modeling human-like color naming behavior in context. arXiv preprint arXiv:2604.25674. To appear in Proceedings of CogSci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