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미술에서 붉은색은 불과 피, 권위와 사랑을 함께 상징해 왔다. 지옥과 연옥의 불에서는 심판과 고통을 나타내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장면에서는 성령의 임재와 신앙의 열정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의 피에서는 희생과 구원을, 성모 마리아의 붉은 옷에서는 사랑과 보호를 의미한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성 아프라 교구박물관은 특별전 《붉은 실은 어디에 있는가? ?(Wo ist der rote Faden?)》를 통해 그리스도교 미술과 역사적 유물에 나타난 붉은색의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았다.

자연에서 얻은 붉은색

19세기 중반 합성염료가 등장하기 전까지 붉은색은 자연에서 얻은 귀중한 재료였다. 꼭두서니에서 추출한 매더 레이크(madder lake), 광물에서 얻은 진사(cinnabar), 연체동물인 뿔고둥에서 채취한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 등이 대표적이다. 붉은색의 차이는 색조만이 아니라 재료의 기원과 생산 방식, 경제적 가치에서 비롯되었다.

진사처럼 광물에서 얻은 안료는 무기질에 속하고, 꼭두서니나 케르메스(kermes), 뿔고둥에서 얻은 색소는 식물이나 동물에서 추출한 유기질 색재료다. 특히 티리언 퍼플은 생산에 많은 노동과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권력과 부를 나타냈다. 역사적으로 ‘자색’ 또는 ‘퍼플’이라 불린 직물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패류 염료가 아니라 케르메스로 염색한 붉은 직물이기도 했다.

정화의 불과 파멸의 불

종교화에 나타난 붉은 불은 심판과 정화라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연옥의 불은 죄를 씻고 구원에 이르는 정화의 과정이지만, 지옥의 불은 파멸과 영원한 형벌을 나타낸다. 같은 불이라도 인간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에 따라 상징이 달라진다.

불은 성령의 현현을 나타내기도 한다. 오순절 성령강림 장면에서 사도들의 머리 위에 나타나는 불꽃은 성령의 임재와 신앙의 열정을 의미한다. 이때 붉은색은 두려움의 색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밝히고 변화시키는 생명력의 색이 된다. 그리스도교의 붉은 불은 심판과 파괴, 정화와 영적 열정을 함께 품는다.

피와 희생, 폭력과 순교

그리스도의 수난을 다룬 장면에서 붉은색은 피와 희생을 나타낸다. 십자가 위에서 흘린 피는 고통과 죽음의 흔적이면서 인류를 위한 희생과 구원의 표지다. 순교자들의 피도 같은 상징 구조를 지닌다. 폭력으로 흘린 피가 신앙을 증언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통로로 해석되면서 붉은색은 죽음과 구원을 동시에 나타낸다.

반면 붉은색은 폭력과 고문, 배신과 죽음의 현실을 감추지 않는다. 종교미술에서 붉은색이 강한 긴장감을 일으키는 까닭은 숭고한 희생만이 아니라 그 희생을 초래한 인간의 폭력까지 함께 드러내기 때문이다.

권력과 교회의 위계

붉은색은 고대부터 지배자의 권위와 부를 나타냈다. 값비싼 자색과 진홍색 직물은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으며, 착용자의 사회적 지위를 시각적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교회의 복식과 권위 체계에도 이어졌다.

전시에 소개된 교황 비오 6세(Pius VI)의 붉은 신발은 붉은색이 교황의 지위와 종교적 권위를 드러내는 색이었음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교황에게 제한되었던 붉은 복식이 뒤에 추기경에게도 확대되면서, 붉은색은 교회 위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색이 되었다. 추기경의 붉은색은 권위뿐 아니라 신앙을 위해 피를 흘릴 각오도 상징한다.

마리아의 사랑과 보호

붉은색은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나타내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사랑을 넘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을 뜻한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작품에서 붉은색은 어머니의 사랑과 보호를 강조한다.

특히 ‘자비의 성모’ 또는 ‘보호망토의 성모(Schutzmantelmadonna)’ 도상에서 마리아의 속옷이나 망토를 붉게 표현한 사례를 볼 수 있다. 붉은 옷은 생명을 품고 지키는 모성과 신성한 사랑을 시각화한다. 같은 붉은색이 그리스도의 피에서는 희생을, 마리아의 옷에서는 사랑과 보호를 나타내며 서로 연결된다.

붉은 산호와 치유의 믿음

아기 예수가 붉은 산호 목걸이나 장식을 착용한 그림도 주목할 만하다. 고대 사람들은 산호가 피와 관련된 질병을 치료하거나 어린이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한다고 믿었다. 아이의 목에 산호 목걸이를 걸어 주는 풍습도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아기 예수의 붉은 산호는 당시의 치료 관습을 반영하면서 장차 흘리게 될 그리스도의 피를 암시한다. 하나의 작은 장신구 안에서 치유와 보호, 수난과 구원의 의미가 겹쳐지는 셈이다.

하나의 색에 담긴 상반된 의미

그리스도교 미술의 붉은색에는 생명과 죽음, 사랑과 폭력, 정화와 파멸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이러한 상반성은 색의 의미가 색 자체에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인물과 사물, 장면과 의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든다.

붉은색을 이해하려면 무엇이 붉게 표현되었는지뿐만 아니라, 그 색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고 누구에게 허용되었으며 어떤 종교적 서사 안에 놓였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붉은색에는 신앙의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권력의 역사, 색을 만들어 온 물질문화가 함께 담겨 있다.


출처: 아우크스부르크 교구, 「그리스도교에서 붉은색의 의미를 추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