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의 색은 운전자의 판단과 행동을 이끄는 정보다. 백색은 차로를 구분하고, 황색은 반대 방향의 교통 흐름이나 통행 제한을 알린다. 분홍색과 연녹색은 복잡한 분기점에서 진행 방향을 안내한다. 운전자는 이러한 색채체계를 읽으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그러나 도로의 색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보로 보이지 않는다. 색각 특성과 연령, 조명, 날씨, 노면 상태에 따라 색의 식별 정도가 달라진다. 컬러유니버설디자인(Color Universal Design)은 이러한 지각의 차이를 고려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색채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설계하는 원칙이다. 도로에서는 색을 선명하게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색이 다르게 보이는 상황에서도 정보의 의미가 유지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공사 구간을 알리는 주황색과 흰색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샌디에이고 북부의 주간고속도로 5호선 공사 구간에 주황색과 흰색이 교대로 이어지는 노면표시를 설치했다. 공사로 차로가 이동하거나 기존 차선을 제거한 흔적이 남을 때 운전자가 임시 주행 경로를 명확하게 찾도록 돕기 위한 시범사업이다.

주황색은 미국의 도로 공사 표지판과 교통콘, 작업 차량에 널리 사용된다. 운전자는 이미 주황색을 공사와 주의의 의미로 학습해 왔다. 캘리포니아의 노면표시는 이러한 색채 의미를 차선으로 확장했다. 새로운 색을 단독으로 제시하기보다 기존 공사시설과 연결해 일관된 시각정보를 구성한 것이다.

주황색과 흰색을 번갈아 사용한 방식에도 의미가 있다. 두 색의 반복은 색상 차이와 함께 밝기와 배열의 변화를 만든다. 주황색을 정확히 구별하기 어려운 운전자도 평소의 흰색 차선과 다른 반복 패턴을 통해 도로 환경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색에 형태와 리듬을 더해 정보의 식별 가능성을 높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시범구간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약 83%가 공사 구간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72%는 속도를 줄였으며, 약 75%는 주황색과 흰색의 조합이 야간에 기존 표시보다 잘 보인다고 응답했다. 다만 이 결과는 운전자의 자기보고를 중심으로 한다. 색각 유형과 연령, 날씨, 사고 감소 효과를 포함한 장기적인 검증이 더 필요하다.

색을 구별하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운전자는 시각정보에 크게 의존한다. 미국 연방도로청은 운전자가 사용하는 정보의 약 90%가 시각을 통해 전달된다고 설명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물의 세부를 구별하는 시력뿐 아니라 대상과 배경 사이의 밝기 차이를 감지하는 대비감도다. 노면과 차선의 대비가 부족하면 정상 시력을 가진 운전자도 차선을 명확하게 보기 어렵다.

색각이상자는 특정 색조를 서로 비슷하게 지각할 수 있다. 적색과 녹색 계열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표적이며, 청색과 황색 계열의 식별에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고령 운전자는 동공의 크기가 줄고 수정체가 황색화되면서 빛을 받아들이는 양과 색 대비를 감지하는 능력이 낮아질 수 있다.

도로의 시각정보를 설계할 때 색상 차이만으로 식별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색이 서로 달라도 명도가 비슷하면 야간이나 우천 시 하나의 색처럼 보일 수 있다. 반대로 색상 차이가 크지 않더라도 밝기와 형태, 위치가 분명하면 정보를 구별하기 쉽다.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은 색을 활용하되, 색을 다르게 인식하는 사람도 형태와 위치, 명도 차이 등을 통해 같은 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노면표시에서는 색과 함께 선의 위치, 굵기, 실선과 점선, 반복 간격, 문자와 화살표를 활용할 수 있다. 여러 단서를 함께 제시하면 특정한 색을 구분하지 못하더라도 필요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공사 구간 노면표시

한국에서는 미국과 같은 주황색·흰색 교차 차선을 공사 구간의 표준 표시로 사용하지 않는다. 공사로 기존 차로를 변경할 때는 임시 노면표시와 함께 교통콘, 드럼, 시선유도봉과 갈매기표지 등의 도류화시설을 설치한다.

기존 차선과 임시 차선이 동시에 보이면 운전자는 어느 선을 따라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국토교통부의 「도로 공사장 교통관리지침」은 공사 구간의 차로 변경과 기존 노면표시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서로 충돌하는 기존 표시를 제거하도록 규정한다. 단기 공사에서는 접착식 반사테이프와 도류화시설을 사용할 수 있으며, 공사가 끝난 뒤에는 임시 노면표시를 제거해야 한다.

한국의 방식은 색 하나보다 여러 안전시설의 조합을 통해 주행 경로를 안내한다. 이는 색을 구별하기 어려운 운전자도 시설의 형태와 배열, 위치를 통해 진행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컬러유니버설디자인과 연결된다.

다만 여러 표시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안전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차선의 제거 흔적이 남거나 임시 차선의 재귀반사성능이 낮으면 오히려 정보가 복잡해진다. 특히 비가 오는 밤에는 노면의 수막이 빛을 반사해 차선과 아스팔트의 대비를 낮춘다. 이때 기존 차선과 임시 차선이 함께 보이면 색각 특성과 관계없이 주행 경로를 판단하기 어렵다. 공사 구간에서는 색채 선택뿐 아니라 기존 표시의 제거 상태, 재귀반사성능과 시설 간의 시각적 일관성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한국의 노면 색 유도선

한국에서 색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표 사례는 노면 색 유도선이다. 교차로와 인터체인지, 분기점에서 분홍색과 연녹색 선을 사용해 목적지별 진행 방향을 안내한다. 운전자는 도로표지의 문자를 모두 읽지 않아도 노면의 색선을 따라 차로를 선택할 수 있다.

노면 색 유도선은 2011년 안산분기점에서 처음 시범 적용된 뒤 전국의 고속도로와 일반도로로 확대됐다. 색을 통해 경로를 연속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 도로표지를 보완한다. 표지판은 특정 지점에서 정보를 제공하지만, 유도선은 차로를 따라 이어지면서 운전자의 시선과 이동을 목적지까지 연결한다.

그러나 분홍색과 연녹색의 조합은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의 관점에서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적색과 녹색 계열의 식별이 어려운 운전자에게 두 색은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노면표시가 마모되거나 비에 젖으면 색의 차이는 더 작아진다.

현재의 유도선은 색만으로 정보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선이 놓인 위치와 진행 방향, 도로표지의 목적지명과 화살표가 함께 제시된다. 운전자는 이러한 단서를 종합해 경로를 판단한다. 다만 여러 색선이 나란히 이어지거나 서로 교차하는 구간에서는 색 이외의 구별 요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분홍색과 연녹색 유도선에 서로 다른 테두리나 반복 패턴을 적용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노면과 도로표지에 동일한 색과 기호를 함께 표시하면 두 정보의 대응 관계도 더 분명해진다. 야간과 우천 환경에서는 색상의 차이보다 명도 대비와 재귀반사성능을 우선해 평가해야 한다.

일부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볼 수 있는 주황색 유도선은 미국의 공사 구간 표시와 의미가 다르다. 한국의 주황색 유도선은 화물차의 하이패스 진입 경로를 안내하는 데 사용된다. 같은 색이라도 국가와 시설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로의 색채정보는 색 자체보다 위치와 형태, 표지, 운영 규칙의 관계 속에서 읽어야 한다.

색은 다른 시각정보와 함께 작동한다

미국의 주황색·흰색 노면표시는 공사 구간이라는 상황 변화를 빠르게 알린다. 한국의 분홍색·연녹색 유도선은 복잡한 갈림길에서 이동할 방향을 보여준다. 목적은 다르지만 두 사례 모두 색을 도로의 기능적 언어로 사용한다.

도로에서 색은 운전자의 주의를 끌고 복잡한 정보를 단순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색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일부 운전자에게 정보가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색상과 명도, 선의 형태와 위치, 반복 패턴, 문자와 화살표가 하나의 체계로 작동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에서 미국식 주황색·흰색 표시를 검토한다면 주황색의 주목성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기존 주황색 유도선과의 의미 충돌, 아스팔트와의 명도 대비, 야간과 우천 시 재귀반사성, 고령자와 색각이상자의 식별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 다양한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현장 실험도 필요하다.

컬러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된 도로는 모든 사람에게 색이 똑같이 보이는 환경을 뜻하지 않는다. 색을 다르게 지각하더라도 같은 정보를 이해하고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뜻한다. 도로의 색은 눈에 잘 띄어야 하지만, 색을 정확히 구별하지 못해도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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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2018). 『노면 색깔 유도선 설치 및 관리 매뉴얼』
국토교통부. (n.d.). 『도로 공사장 교통관리지침』
한국도로교통공단. (2025). 『2024 교통노면표시 설치·관리 업무편람』


사진 출처 : www.linternau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