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주요 페인트·인테리어 기업이 제시한 올해의 색을 비교하면, 서로 다른 색군을 선택하면서도 공통된 방향성이 드러난다. 핵심은 강렬한 새로움보다 자연, 안정, 회복, 생활의 편안함을 색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다.
Dulux의 Soulful Sage는 은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세이지그린이다. 정보 과잉과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보다 가볍고 편안한 공간을 원하는 심리를 반영한다. 자연은 여기에서 장식적 이미지라기보다 심리적 긴장을 완화하는 배경으로 제시된다.
Behr의 Grounded는 올리브와 모스에 가까운 어시 그린으로, 보다 깊고 안정적인 인상을 준다. Behr는 이 색을 일상에서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 ‘living neutral’로 제안한다. 이는 그린이 더 이상 강조색에 머물지 않고, 베이지나 그레이처럼 공간의 기본색 역할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Graham & Brown의 Rose Earth는 흙빛을 머금은 핑크다. 일반적인 파스텔 핑크보다 채도가 낮고 따뜻하며, 점토와 광물 안료를 연상시키는 색조가 특징이다. 이 색에서는 자연이 단순한 휴식의 이미지보다 재료, 수공예, 전통성과 연결된다.
Valspar의 Cottage Door는 회색 기운이 섞인 차분한 블루다. 다른 기업들이 그린이나 어스톤을 선택한 것과 달리 블루 계열이지만, 방향성은 유사하다. 선명한 블루보다 채도를 낮춰 사색과 안정, 느린 생활의 감각을 강조한다.
Dutch Boy의 Deep Rooted는 흙빛이 강한 오렌지 계열이다. 세이지나 블루가 정적인 안정감을 강조한다면, 이 색은 테라코타와 흙의 온기를 통해 친밀감과 생활의 생동감을 표현한다.
이처럼 2027년 올해의 색은 특정 색상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린, 핑크, 블루, 오렌지처럼 서로 다른 색상들이 낮은 채도와 자연적인 색조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뉴트럴 영역을 형성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최근 공간 색채에서 뉴트럴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뉴트럴이 화이트, 베이지, 그레이처럼 색감이 약한 색을 중심으로 했다면, 이제는 그린이나 블루, 핑크에도 회색이나 갈색 기운을 더해 배경색처럼 사용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기업들이 색 자체보다 색에 부여된 정서적 의미를 함께 제안한다는 것이다. 안정, 회복, 자연, 편안함, 가벼움과 같은 언어가 반복되는 것은 올해의 색이 단순한 색채 예측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와 소비자의 감정을 연결하는 색채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2027년 올해의 색은 하나의 유행색을 제시하기보다, 자연에서 가져온 저채도 색을 통해 안정과 개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색의 선택보다 그 색이 어떤 생활방식과 감정을 상징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의 색은 동시대의 공간 감성을 읽는 하나의 지표라 할 수 있다.
참고자료
Dulux, Colour of the Year 2027: Soulful Sage, 2026.
AkzoNobel, Color of the Year 2027, 2026.
Behr Paint Company, 2027 Color of the Year: Grounded, 2026.
Graham & Brown, Design & Color of the Year 2027: Rose Earth, 2026.
Valspar, 2027 Color of the Year: Cottage Door, 2026.
Dutch Boy Paints, 2027 Color of the Year: Deep Rooted,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