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환경의 색채 통계와 인간 시각 체계의 형성

인간은 수많은 색을 구별하지만, 모든 색을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하지는 않는다. 빨강·노랑·초록·파랑은 다른 색의 혼합으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독립적인 색으로 지각되는 반면, 주황이나 보라와 같은 색은 두 색 사이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인식된다. 색채과학에서는 이러한 빨강·노랑·초록·파랑을 일반적으로 고유색(unique hues)​이라고 부른다. 이는 색을 혼합하거나 재현하기 위한 기준색을 뜻하는 원색(primary colors)​과는 다른 개념이다. 원색은 RGB나 CMY처럼 색채 시스템에 따라 달라지지만, 고유색은 인간이 색을 어떻게 지각하고 경험하는가에 관한 개념이다. 여기에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인간의 망막에는 서로 다른 파장대에 반응하는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 존재하는데, 왜 지각 수준에서는 세 색이 아니라 네 색이 기본적인 색채 경험을 구성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2026년 UC Berkeley의 Alexander Belsten, E. Paxon Frady, Bruno A. Olshausen은 이 질문을 인간이 오랫동안 노출되어 온 자연환경의 색채 통계와 뇌의 효율적인 정보처리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했다. 이 연구는 기본색 지각을 단순히 망막의 생리적 구조에서 찾는 대신, 환경과 시각 체계가 상호작용해 형성한 정보 구조의 결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자연환경의 색은 균등하게 분포하지 않는다

우리가 오늘날 일상에서 접하는 색채환경은 매우 인공적이다. 디지털 화면과 광고, 패션, 상품 패키지, 도시 사인에는 고채도의 색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현실 세계의 색이 색상환 전체에 비교적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자연환경의 색채 분포는 상당히 다르다.

Berkeley 연구진은 색 정보를 정밀하게 보정한 503개의 자연 장면을 분석하여 인간의 원추세포가 자연환경에서 어떠한 색 정보를 받아들이는지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자연환경에서 가장 큰 시각적 변화는 색상 자체보다 명도 변화에서 나타났으며, 대부분의 색은 무채색에 가깝거나 비교적 낮은 채도를 보였다. 더 중요한 점은 유채색 역시 색상환 전체에 균등하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특정한 색 방향에 정보가 집중되어 있었으며, 특히 빨강 계열과 황록·청록 계열의 색 정보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즉 자연의 색채환경은 무작위적인 색의 집합이 아니라 일정한 통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시각 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생물학적 감각 체계는 환경의 모든 자극을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하기보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정보와 중요한 차이를 효율적으로 구분하도록 발달해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뇌는 색채 정보를 효율적으로 조직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자연의 색채 분포를 설명하기 위해 희소부호화(sparse coding) 개념을 적용했다. 희소부호화는 복잡한 정보를 가능한 한 적은 수의 기본 요소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정보처리 방식이다. 시각 체계가 자연환경의 모든 색을 개별적으로 저장하고 처리하기보다는, 제한된 수의 기준 축을 이용하여 다양한 색 정보를 압축해 표현한다고 보는 것이다.

연구진은 자연 장면의 색 데이터를 최소한의 기본 요소로 효율적으로 표현하도록 계산 모델을 학습시켰다. 그 결과 흥미로운 구조가 나타났다. 명암을 담당하는 요소를 제외한 네 개의 색채 방향이 인간이 고유색으로 지각하는 빨강·노랑·초록·파랑과 가까운 방향으로 형성된 것이다. 더욱이 이 네 방향은 독립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빨강과 초록, 파랑과 노랑이 서로 대립하는 구조를 형성했다.

이는 인간 색각의 핵심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인 반대색 구조(opponent-color organization)​가 자연환경의 색채 정보를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빨강·노랑·초록·파랑이라는 네 가지 기본적인 색채 경험은 단순한 문화적 관습이나 임의적 분류라기보다, 인간 시각 체계가 자연환경의 색 정보를 조직해온 방식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삼색설과 반대색설을 연결하는 환경의 역할

이 연구는 색각 연구의 두 고전적 이론을 새로운 관점에서 연결한다.

토머스 영과 헤르만 폰 헬름홀츠로 이어지는 삼색설(trichromatic theory)​은 인간의 색각이 세 종류의 감광 수용체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현대 생리학에서도 인간의 망막에는 단파장, 중파장, 장파장에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있다. 반면 에발트 헤링의 반대색설(opponent-process theory)​은 인간이 색을 실제로 경험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헤링은 빨강과 초록, 파랑과 노랑을 서로 대립하는 색채 축으로 보았다. 우리는 노란빛이 도는 빨강이나 푸른빛이 도는 초록은 쉽게 경험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붉은 초록’이나 ‘푸른 노랑’을 경험하지는 못한다. 이는 색채 정보가 지각 단계에서 단순히 세 원추세포의 신호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립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삼색설과 반대색설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층위의 색각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이해되어 왔다. 삼색설이 망막에서 색 정보를 받아들이는 생리적 기초를 설명한다면, 반대색설은 이후 신경계에서 색 정보가 조직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번 연구는 여기에 자연환경의 통계적 구조라는 새로운 요소를 추가한다.

즉 인간의 망막은 세 종류의 원추세포를 통해 색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자연환경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색채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네 개의 고유색과 두 개의 반대색 축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세 개의 수용체’와 ‘네 개의 고유색’ 사이에는 반드시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는 색채 정보의 입력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정보를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지각 구조라고 이해할 수 있다.

기본색은 자연이 만들었는가, 문화가 만들었는가

여기서 색채과학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색채인문학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기본색이라고 부르는 색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언어와 문화가 만들어낸 것인가. 이 문제는 색채언어 연구에서도 오래된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1969년 브렌트 벌린(Brent Berlin)과 폴 케이(Paul Kay)는 《기본색채어: 그 보편성과 진화(Basic Color Terms: Their Universality and Evolution)》에서 다양한 언어권의 색채어를 비교하였다. 이들은 문화마다 사용하는 색채어의 수와 범주는 다르지만, 기본색채어가 형성되는 방식에는 일정한 공통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는 이후 수많은 비판과 수정, 재해석을 거쳤지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색채 범주는 언어와 문화가 임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지각 구조에 일정한 보편적 기반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Berkeley의 연구는 이 논쟁에 또 하나의 층위를 추가한다.

색채 범주가 단순히 생물학과 문화 가운데 하나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감각기관–신경계–지각–언어–문화가 연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될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특정한 자연환경 속에서 진화했고, 그 환경의 빛과 색을 세 종류의 원추세포를 통해 받아들였다. 이후 신경계는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색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구조를 형성했으며, 인간은 이러한 지각적 차이에 이름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 색채어는 다시 사회적 의미와 상징, 미적 가치, 문화적 관습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색은 자연적인가, 문화적인가’라는 이분법은 충분하지 않다. 색채 경험은 자연과 문화 가운데 어느 한쪽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감각적 경험이 신경계와 언어, 사회문화적 체계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조직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색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번 연구가 곧바로 빨강·노랑·초록·파랑이라는 네 개의 기본색이 자연환경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이 보여준 것은 자연 장면의 실제 색채 통계와 희소부호화라는 정보처리 원리를 결합했을 때, 인간의 고유색 및 반대색 구조와 유사한 체계가 계산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모델이 인간 신경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메커니즘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는 앞으로 신경생리학적 연구를 통해 추가로 검증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색채 경험의 성격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흔히 색을 사물의 고유한 속성으로 생각한다. 사과는 빨갛고, 잎은 초록이며, 하늘은 파랗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색은 사물에 단순히 붙어 있는 물리적 성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색채 경험에는 빛의 분광적 특성이 있고, 이를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이 있으며, 정보를 조직하는 신경계가 존재한다. 여기에 다시 언어와 사회적 관습, 역사와 상징이 더해진다. 따라서 색은 어느 한 지점에 고정되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색은 자연환경의 물리적 조건과 인간의 감각기관, 뇌의 정보처리, 언어와 문화가 만나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경험이다. 그런 점에서 빨강·노랑·초록·파랑이 왜 인간에게 특별한 색으로 경험되는지를 묻는 것은 단순한 색채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그 질문은 결국 인간이 환경을 어떻게 감각하고, 그 감각을 어떻게 질서화하며, 다시 그것을 언어와 문화의 체계로 발전시켜 왔는지를 묻는 질문이 된다.

색은 자연에 이미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문화가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것만도 아니다. 색채 경험은 자연과 인간의 지각 체계, 그리고 문화가 오랜 시간 상호작용하면서 형성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색채과학과 색채인문학은 서로 만난다.


참고문헌
Belsten, A., Frady, E. P., & Olshausen, B. A. (2026). Emergence of unique hues from sparse coding of color in natural scenes. Journal of the Optical Society of America A, 43(8), 1210–1223.
Berlin, B., & Kay, P. (1969). Basic Color Terms: Their Universality and Evolutio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Sanders, R. (2026, August 31). Nature’s color palette explains why everything we see is a mix of red, yellow, green and blue. Berkeley News,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사진 설명]
자연 풍경에 대한 인간 눈의 반응을 평가하는 데 사용된 사진 샘플.
눈의 광수용체 반응은 연구자들이 우리 뇌가 색을 빨강, 노랑, 초록, 파랑의 조합으로 인식하고 주황색이나 보라색과 같은 다른 색으로는 인식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자연 풍경의 대부분 픽셀은 회색이거나 채도가 낮으며, 색상은 주로 빨강, 황록색, 청록색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알렉산더 벨스텐, 브루노 올하우젠/UC 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