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서 색채는 왜 다시 중요해졌는가

건축에서 색은 오랫동안 형태와 재료가 결정된 뒤 더해지는 마감이나 장식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현대건축에서 흰색과 회색, 콘크리트와 금속의 무채색은 합리성과 기능성, 보편성을 상징하는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은 형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빛과 재료, 온도와 질감뿐 아니라 색채 역시 공간의 크기와 깊이를 인식하게 하고, 장소에 대한 감정과 기억을 형성한다.

2026년 8월 15일 《Wallpaper*》가 소개한 새 책 《Chromatic Architecture: The Craft of Colour in Design》은 이러한 색채의 역할을 다시 건축의 중심으로 가져온다.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애덤 너새니얼 퍼먼(Adam Nathaniel Furman)과 저널리스트 케이트 마자데(Kate Mazade)가 함께 쓴 이 책은 세계 각지의 34개 건축과 공간 사례를 통해 색이 건축에서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를 살펴본다. 저자들에게 색채는 건물의 표면을 꾸미는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지각하고 공간에 정서적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이 책은 17세기 이란의 샤 모스크(Shah Mosque)에서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의 1971년 바르나 레스토랑(Varna Restaurant),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과 세바스티안 베만(Sebastian Behmann)의 피오르덴후스(Fjordenhus)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 종교와 기술 환경에서 나타난 색채를 하나의 흐름 안에 놓는다. 퍼먼은 이러한 구성이 색이 사회·문화·경제·종교·도시적 조건에 따라 얼마나 유연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색은 공간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

색채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건축의 색은 단순한 시각적 특성이 아니다. 인간은 벽과 천장, 바닥을 각각 독립된 면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색의 밝기와 대비, 채도와 재료의 반사 특성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공간의 거리와 규모, 방향을 판단한다.

밝은 색의 벽은 공간을 넓게 느끼게 할 수 있고, 어두운 천장은 공간의 높이를 낮게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비슷한 계열의 색이 이어지면 공간의 경계가 부드럽게 연결되지만, 강한 색채 대비가 사용되면 서로 다른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따라서 건축에서 색은 이미 만들어진 형태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형태가 어떻게 지각될지를 조절하는 수단이 된다.

베르너 팬톤의 바르나 레스토랑은 이러한 색채의 공간적 힘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보라색 계열의 카펫과 강렬한 색의 천장, 반복되는 원형 패턴은 바닥·벽·천장의 전통적인 경계를 흐리게 한다. 이 공간에서 색은 가구나 벽면의 장식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하나의 감각적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Wallpaper》 역시 이 공간을 당시의 사이키델릭 문화가 반영된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한다.

색은 장소의 문화와 기억을 담는다

건축의 색을 이해할 때 중요한 또 하나의 관점은 색채와 문화의 관계다. 색은 어디에서나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사용 가능한 재료와 안료, 종교적 상징, 기후와 빛의 조건, 지역의 전통에 따라 색채의 의미와 사용 방식은 달라진다.

샤 모스크의 푸른색은 이를 잘 보여준다. 건축을 덮고 있는 수많은 세라믹 타일의 청색과 황갈색 계열은 단순한 표면 장식이 아니다. 타일 제작 기술과 이슬람 장식문화, 지역의 빛이 결합하면서 독특한 공간 경험을 만든다. 《Chromatic Architecture》는 샤 모스크에 150만 개가 넘는 세라믹 타일이 사용되었다고 소개하면서, 이러한 색채가 건축과 문화적 정체성을 연결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현대 건축에서도 색은 장소의 재료와 기억을 표현할 수 있다. 태국 수파시드 아키텍츠(Suphasidh Architects)의 다목적 건물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얻은 흙을 이용해 갈색, 번트 오렌지, 먼지가 섞인 듯한 검은색의 층을 외벽에 만들었다. 여기에서 색은 페인트로 선택된 색상값이라기보다 재료가 가진 지역성과 물질적 기억의 결과에 가깝다.

이러한 사례는 건축의 색을 ‘무슨 색을 칠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벗어나게 한다. 색은 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기술로 만들어졌는지, 그 지역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언어가 될 수 있다.

강렬한 색만이 색채건축은 아니다

색채건축이라고 하면 흔히 원색이나 높은 채도의 건물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Chromatic Architecture》가 보여주는 중요한 점은 색의 효과가 반드시 강렬함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덴마크 베일레의 피오르덴후스는 서로 미묘하게 다른 색조의 벽돌을 사용한다. 이 벽돌들은 하루 동안 변화하는 햇빛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으로 보인다. 색을 고정된 표면값이 아니라 빛과 시간에 따라 변하는 현상으로 다룬 것이다.

이처럼 건축의 색은 때로 눈에 띄는 강렬한 대비보다 작은 변화에서 더 풍부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재료의 표면과 자연광, 그림자, 시간의 변화가 만나면서 동일한 건축도 아침과 오후, 맑은 날과 흐린 날에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좋은 색채건축은 반드시 ‘컬러풀한 건축’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색의 양이 아니라 색이 공간과 재료, 빛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섬세하게 작동하는가이다.

무채색은 정말 중립적인가

이 책은 오늘날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채색 중심의 환경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흰색과 회색, 검은색은 흔히 중립적인 색으로 여겨진다. 특히 상업용 건축과 주거 공간에서는 다양한 사용자의 취향을 수용하고 부동산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무채색이 안전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퍼먼은 현대 도시환경이 지나치게 단조로운 방향으로 기울었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그는 색을 제거하는 것이 반드시 보편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특정한 미적 가치가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된 결과일 수 있다고 본다.

흰색이나 회색도 문화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색은 아니다. 현대건축에서 흰색은 청결과 합리성, 기술과 미래를 상징해왔으며, 노출 콘크리트의 회색 역시 물질의 진정성이나 절제된 미학과 연결되어 왔다.

결국 ‘색을 사용하지 않는 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채색을 선택하는 것 역시 하나의 색채 선택이며, 그 선택에는 시대의 미학과 경제적 판단, 문화적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색채는 인간의 즐거움을 만드는 건축적 요소다

《Chromatic Architecture》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퍼먼이 색채를 ‘인간의 즐거움의 근본적인 요소(fundamental aspect of human pleasure)’​라고 말한 부분이다.

이 표현은 건축에서 색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바꾸어 놓는다.

건축은 오랫동안 구조적 안정성과 기능, 효율성이라는 기준을 중심으로 평가되어 왔다. 물론 이러한 조건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공간을 기능만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공간에서는 활력을 느끼며, 어떤 장소에서는 오래전 경험을 떠올린다.

색채는 이러한 감각과 감정을 형성하는 데 관여한다.

색은 공간을 더 밝거나 어둡게 느끼게 하고, 가까워 보이거나 멀어 보이게 한다. 장소의 분위기를 만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움직이며, 특정한 공간을 기억하게 한다. 때로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드러내고, 개인과 공동체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색채는 건축 이후에 덧붙이는 장식이 아니다.

색채는 인간이 공간을 보고, 느끼고, 기억하는 방식을 구성하는 건축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Chromatic Architecture》가 다시 제기하는 질문도 결국 여기에 있다. 좋은 건축이 인간이 살아가기 편리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면, 그 공간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감정 또한 건축이 고려해야 할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최근 건축과 도시 공간에서 색채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화려한 색이 유행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색을 통해 공간의 정체성과 장소성, 감각과 정서를 다시 생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색채를 건축의 표면에서 떼어내어 인간의 경험 속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건축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건물은 더 이상 형태와 재료의 조합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빛과 색, 기억과 감정이 끊임없이 만나는 하나의 경험적 환경이 된다.


참고 및 출처
Wallpaper*. (2026, August 15). New bookChromatic Architecturecelebrates colour as afundamental aspect of human pleasure.
Furman, A. N., & Mazade, K. (2026). Chromatic Architecture: The Craft of Colour in Design. London: RIBA Publis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