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올해의 색 ‘Deep Rooted’와 색채마케팅의 변화

한동안 인테리어와 라이프스타일 시장을 지배한 색은 베이지와 회색, 아이보리처럼 눈에 부담을 주지 않는 중성색이었다. 팬데믹 이후에는 자연과 휴식, 안정감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세이지 그린과 따뜻한 베이지, 브라운 계열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2027년을 앞두고 이러한 흐름에 조금 다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자연스러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색의 존재감은 한층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페인트 브랜드 Dutch Boy Paints는 2027년 올해의 색(Color of the Year)으로 딥 루티드(Deep Rooted, 311-7DB)를 선정했다. 햇볕에 오래 구운 흙이나 테라코타를 연상시키는 깊은 오렌지색이다. Dutch Boy의 공식 색 정보에 따르면 이 색은 오렌지 계열의 따뜻한 색으로, RGB 값은 166·97·60, LRV는 17로 낮아, 밝기보다는 무게감과 깊이가 느껴지는 색이다.

오렌지는 ‘올해의 색’으로 자주 선택되는 색은 아니다. 최근 수십 년간 페인트 브랜드와 색채기관이 발표한 올해의 색을 보면 블루, 그린, 그레이, 베이지처럼 비교적 차분하고 안정적인 색조가 주로 강세를 보여왔다. Forbes 역시 Dutch Boy의 선택을 소개하며, 오렌지가 올해의 색으로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을 짚었다. Pantone의 사례를 보더라도 타이거릴리(Tigerlily, 2004), 탠저린 탱고(Tangerine Tango, 2012), 리빙 코랄(Living Coral, 2019), 피치 퍼즈(Peach Fuzz, 2024) 정도가 넓은 의미에서 오렌지 계열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왜 지금 오렌지일까.

중성색에서 더 깊고 따뜻한 색으로

Deep Rooted를 단순히 ‘강한 오렌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하면 최근 색채 흐름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이 색은 네온 오렌지처럼 인공적이고 자극적인 색도, 팝아트에서 볼 수 있는 선명한 오렌지도 아니다. 브라운과 적색이 섞인 깊은 색조로, 흙과 벽돌, 도자기, 가죽처럼 자연재료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색에 가깝다.

따라서 Deep Rooted의 등장은 기존의 자연색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의미라기보다, 중성색 중심의 자연주의가 조금씩 채도와 색감을 회복하고 있다는 변화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최근 몇 년간 인테리어에서는 크림, 샌드 베이지, 토프, 웜 그레이처럼 부드럽고 채도가 낮은 중성색이 널리 사용되었다. 최근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월넛, 초콜릿 브라운, 토바코, 러스트, 테라코타처럼 더 깊고 색감이 분명한 자연색이 주목받고 있다. Deep Rooted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즉, 중성색의 시대가 끝나고 갑자기 강한 오렌지가 등장한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은 유지하면서 색이 조금씩 더 따뜻하고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에서 ‘자연스러운 개성’으로

Dutch Boy가 Deep Rooted에 부여한 의미를 살펴보면, 이 색은 단순히 편안하고 안정적인 자연색에 머물지 않는다. 브랜드는 Deep Rooted를 ‘grounded optimism’, 즉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둔 낙관성과 연결하며, 즐거움과 인간적인 교류, 친절, 개성, 진정성과 같은 가치를 함께 강조한다. Home Furnishings Business에 소개된 설명에서도 Deep Rooted는 공간에 따뜻함과 활기를 더하고,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돕는 색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해석은 최근 색채마케팅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동안 자연색은 편안함, 휴식, 안정, 웰빙과 같은 이미지와 주로 연결되어 왔다. 그러나 Deep Rooted가 제안하는 자연스러움은 조금 다르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머물고 교류하며 자신의 취향과 생활방식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의미가 넓어지고 있다.

최근 인테리어에서도 지나치게 정돈된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나 개인의 물건과 기억, 빈티지 가구, 수공예품, 다양한 재료의 질감을 함께 드러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공간에서 색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편안함을 유지하면서도 공간의 분위기와 사용자의 취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테라코타 오렌지가 이러한 흐름과 잘 맞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색감은 충분히 살아 있지만 흙과 벽돌, 도자기 같은 자연재료를 떠올리게 해 지나치게 강하거나 인공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중성색보다 존재감이 뚜렷하면서도 선명한 오렌지보다는 차분하다. 그래서 Deep Rooted는 안정감과 개성, 자연스러움과 표현성을 함께 담아내는 색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의 색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Deep Rooted는 ‘올해의 색’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보는 데도 좋은 사례다.

올해의 색을 선정하기 위해 기업들은 패션, 가구, 자동차, 화장품, 영화와 드라마, 전시, 공간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색과 분위기를 살펴본다. 여기에 소비자의 생활방식과 사회문화적 변화까지 함께 분석해 앞으로 주목할 색을 선정한다.

Dutch Boy도 2027년 색을 선정하면서 패션과 액세서리, 섬유, 화장품, 가구, 홈데코, 영화와 텔레비전 등 다양한 분야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특히 2027년 봄·여름 패션 컬렉션과 밀라노 패션위크의 스트리트 패션에서 나타난 오렌지 계열에 주목했고, 상업 인테리어 분야의 주요 전시회인 NeoCon에서도 테라코타 계열의 색이 가구와 공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과정은 색채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하나의 색이 특정 산업에서 시작되어 다른 분야로 일방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패션에서 등장한 색이 가구와 화장품, 그래픽, 공간에서 비슷한 시기에 반복되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기업은 이러한 여러 신호를 모아 대표적인 색과 이야기로 정리한다.

따라서 ‘올해의 색’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결과라기보다, 이미 여러 산업과 문화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를 하나의 색으로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기업이 이렇게 선정한 색을 다시 시장에 제안하면 그 색은 제품과 가구, 패션, 공간에 더 많이 사용된다. 결국 올해의 색은 트렌드를 관찰한 결과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트렌드를 확산시키는 역할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 다시 주목받는 흙의 색

Dutch Boy가 Deep Rooted를 설명하면서 ‘인간적인 연결’을 강조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브랜드는 이 색을 디지털 환경에서 느끼기 쉬운 고립감과 대비되는 친절, 교류, 놀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과 연결한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수록, 반대로 손으로 만지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흙과 나무, 돌, 가죽, 직물처럼 재료의 질감이 느껴지는 소재가 다시 주목받고, 지나치게 매끈하고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보다 손길과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을 편안하게 느끼는 경향도 나타난다.

테라코타는 이런 흐름과 잘 맞는 색이다. 본래 흙을 구워 만든 재료에서 비롯된 색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흙과 불, 햇빛, 시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눈으로 보는 색이면서 동시에 거칠고 따뜻한 재료의 질감까지 연상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Deep Rooted는 디지털 화면에서 만나는 매끄럽고 균일한 색과는 다른 인상을 준다. 완벽하게 가공된 색이라기보다 자연과 재료,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듯한 색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의미는 기업이 색에 부여한 마케팅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색채마케팅은 아무런 근거 없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 사람들이 이미 느끼고 있는 욕구와 사회의 변화를 읽고, 그것을 하나의 색으로 보여줄 때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다. Deep Rooted가 흙과 자연, 인간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 강한 색보다, 더 많은 개성을 원하는 시대

Deep Rooted가 실제로 2027년을 대표하는 색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여러 페인트 기업과 색채기관이 서로 다른 올해의 색을 발표하기 때문에 하나의 색이 그해의 모든 색채 흐름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올해의 색은 미래를 확정하는 예언이라기보다 앞으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제안에 가깝다.

그럼에도 Deep Rooted가 보여주는 방향은 흥미롭다. 최근의 색채 변화는 미니멀리즘에서 갑자기 맥시멀리즘으로 이동하거나, 중성색이 사라지고 선명한 원색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크림과 베이지, 토프 같은 부드러운 중성색에서 브라운과 러스트, 테라코타처럼 조금 더 따뜻하고 색감이 분명한 자연색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라는 기존의 가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따뜻함과 즐거움, 개성을 조금씩 더하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공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확인된다.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보다는 자신의 물건과 취향, 기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공간이 관심을 받고 있다. 출판과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도 타인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삶과 취향을 돌아보고 ‘나답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Deep Rooted가 강조하는 개성과 진정성 역시 이러한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연결해서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27년의 Deep Rooted는 단순히 새로운 오렌지색의 등장을 넘어선다. 중성색 중심의 차분한 공간에 따뜻함과 생기를 더하고, 그 안에 개인의 취향과 생활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려는 최근의 변화를 보여주는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출처
Dutch Boy Paints. (2026). Deep Rooted 311-7DB. https://www.dutchboy.com/en/colors/color-library/paint/orange/deep-rooted-311-7db.html
Foster, R. D. (2026, August 25). Dutch Boy 2027 color of the year is a rare orange hue. Forbes. https://www.forbes.com/sites/rdaniel-foster/2026/08/25/dutch-boy-2027-color-of-the-year-is-a-rare-orange-hue/
Foster, R. D. (2026, August 26). Behr’s 2027 color of the year is grounded in fertile earth tones. Forbes. https://www.forbes.com/sites/rdaniel-foster/2026/08/26/behrs-2027-color-of-the-year-is-grounded-in-fertile-earth-tones/
Parrish, K. (2026, August 25). Dutch Boy Paints introduces color of the year for 2027. Home Furnishings Business. https://hfbusiness.com/hfbnow/ArticleId/29097/Subscribe/Subscribe-to-our-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