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색을 사물의 속성처럼 말한다. 벽은 흰색이고, 의자는 빨간색이며, 나무는 갈색이라고 한다. 그래서 공간의 색채를 계획할 때도 벽과 바닥, 천장, 가구에 어떤 색을 칠할 것인지부터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색은 사물의 표면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같은 벽도 아침과 저녁에 다르게 보이고, 같은 회색도 주변에 어떤 색이 놓이는가에 따라 밝거나 어둡게 느껴진다. 빛이 달라지면 색도 달라지고, 우리가 움직이면 반사와 그림자가 변하면서 공간의 색채 역시 계속 바뀐다. 그렇다면 색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국제조명위원회(CIE)는 지각된 색을 단순히 물체가 가진 물리적 특성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색의 모습은 색 자극의 분광분포뿐 아니라 자극의 크기와 형태, 주변 환경, 관찰자의 시각적 순응 상태, 이전의 관찰 경험 등에 영향을 받는다. 현대의 색채외관모델(Color Appearance Model)이 같은 색 자극이라도 관찰 조건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를 계산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CIECAM16 역시 물리적으로 측정한 XYZ 값을 그대로 색 경험과 동일시하지 않고, 관찰 조건을 고려해 밝기·명도·채도·색채감 등의 지각적 속성을 예측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색표의 값은 색채 경험의 출발점이지 결과가 아니다. 벽에 지정된 하나의 먼셀값이나 NCS 값이 실제 공간에서 언제나 똑같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광원의 종류와 방향, 자연광의 양, 주변 재료의 색, 표면의 광택과 질감, 관찰자의 위치가 모두 색의 외관을 바꾼다. CIE 역시 물체의 시각적 외관을 이해하려면 물체 자체의 광학적 특성뿐 아니라 광원의 위치·크기·스펙트럼, 주변 시야와 관찰자의 시각체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최근 발표된 앤 베로니카 얀센스(Ann Veronica Janssens)의 전시는 이러한 색의 성격을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2026년 9월 도쿄 긴자 메종 에르메스에서 시작되는 일본 첫 개인전 《도쿄, 긴자 5초메 4-1(5 Chome 4-1 Ginza, Tokyo)》에서 얀센스는 색을 벽이나 캔버스의 표면에 고정하지 않는다. 작가는 오랫동안 빛, 유리, 안개, 인공 연무 등 비물질적인 요소를 이용해 관람자의 지각을 흔드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 역시 관람자가 움직이고 다른 사람과 마주치며 공간을 인식하는 과정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구성된다.

《Rose》|2007년|7기의 스포트라이트, 인공 먼지|지름 350-440 cm(사이즈 가변)| Photo: Andrea Rossetti | Courtesy of IAC Villeurbanne

대표 작품인 〈로즈(Rose)〉는 일곱 개의 스포트라이트와 공기 중의 인공 입자를 이용한다. 빛은 원래 그 자체로는 공간 속에서 선명한 형태를 갖지 않지만 공기 중의 입자와 만나면서 보이는 덩어리가 된다. 빛과 색은 벽에 칠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기 속에서 나타난다. 관람자가 그 사이를 움직이면 빛의 겹침과 색의 농도가 달라지고,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색의 형태 또한 변화한다. 이번 전시에는 푸른 글리터와 유리 등을 활용해 반사와 투과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들도 포함된다.

이처럼 색을 공간의 경험으로 바라보면 ‘공간색채’의 의미도 달라진다. 전통적인 환경색채 계획에서는 건물의 외벽, 벽체, 바닥, 천장, 가구 등의 표면색을 조사하고 색상·명도·채도의 관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공간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빛과 반사, 투과, 그림자, 시간, 움직임이라는 요소가 더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유리벽은 투명한 재료처럼 보이지만 외부 풍경과 실내 조명, 반사된 사람의 모습이 겹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색을 만든다. 유광 금속은 주변 색을 받아들이고, 반투명 소재는 빛을 통과시키면서 색의 농도를 변화시킨다. 하루 동안 자연광의 색온도와 입사각이 달라지면 같은 실내도 아침과 오후, 저녁에 서로 다른 색채 분위기를 갖는다. 공간색채는 고정된 배색표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관계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관찰자의 신체도 포함된다. 우리는 색을 한 지점에 서서 정지된 화면처럼 바라보지 않는다. 건물에 들어가고, 복도를 걷고, 계단을 오르며 계속 다른 각도에서 공간을 경험한다. 하나의 붉은 벽도 멀리에서는 공간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가 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시야 전체를 채우면서 분위기를 지배하는 색채환경이 된다. 같은 색이라도 거리에 따라, 시야에서 차지하는 면적에 따라 경험은 달라진다. 실제 CIE의 색채 연구에서도 자극의 크기나 주변 시야가 색 외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조건으로 다뤄지고 있다.

따라서 공간에서 색을 설계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색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색이 어떤 빛 속에서 보이는가, 어떤 재료에 적용되는가, 어떤 색과 만나며, 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움직이는가​이다.

이러한 관점은 색채디자인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좋은 공간색채는 아름다운 색 몇 가지를 선택해 조화롭게 배치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연광이 변할 때 공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표면의 광택이 빛을 어떻게 반사하는지, 투명한 재료가 주변색을 어떻게 겹쳐 보여주는지, 사용자가 이동하면서 어떤 색을 먼저 보고 다음 색을 경험하는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색채는 표면의 마감재를 결정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공간 경험을 조직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결국 “색은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위치를 답하기는 어렵다. 색은 물체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빛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물체의 물리적 특성과 빛, 주변 환경, 인간의 시각과 경험이 만나는 순간에 색이 나타난다. 그래서 공간의 색은 벽에 고정되어 있기보다 빛과 재료, 시간과 인간 사이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현상​에 가깝다.

표면에 색을 칠하는 시대에서 색으로 공간의 경험을 설계하는 시대로 이동한다는 것은 색채디자인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슨 색인가’만이 아니다. 그 색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까지 생각해야 한다. 색을 공간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색을 인간의 경험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참고 및 출처
CIE. (2018). Colorimetry, 4th Edition. CIE 015:2018.
CIE. (2022). The CIE 2016 Colour Appearance Model for Colour Management Systems: CIECAM16. CIE 248:2022. DOI: 10.25039/TR.248.2022.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2026). “5 Chome 4-1 Ginza, Tokyoby Ann Veronica Janssens, Ginza Maison Hermès Le Forum.
Hermès. (2026). Ann Veronica Janssens: 5 Chome 4-1 Ginza, Tokyo, 2026.9.11–2027.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