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색을 예측하는 시대
우리는 아직 2026년에 살고 있지만, 색채전문가들은 이미 2028년의 색을 이야기하고 있다. Color Marketing Group(CMG)은 2026년 8월 27일부터 28일까지 ‘2028+ World Color Forecast’를 공개하는 Virtual Reveal을 열었다. 세계 각 지역에서 진행된 ChromaZone 워크숍과 CMF-Xchange의 결과를 종합해 아시아·태평양, 유럽, 라틴아메리카, 북미의 색채 방향을 제안하는 행사다. 이 과정에는 200명이 넘는 CMG 회원과 전문 색채예측가가 참여했다.
2028년에 사람들이 어떤 색을 좋아할지 아직 알 수 없는데도, 이미 그 색을 예측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색채전문가는 정말 미래의 색을 ‘맞히는’ 사람일까. 그리고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등장한 지금, 이러한 일은 인간보다 AI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의 색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색채 트렌드라고 하면 흔히 특정 기관이 몇 가지 색을 골라 ‘올해의 컬러’나 ‘미래의 유행색’을 발표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전문적인 색채예측은 단순한 인기투표와는 상당히 다르다.
CMG의 예측 과정에서는 사회, 문화, 경제, 환경과 같은 변화가 색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함께 살핀다. 특히 CMG는 색뿐 아니라 소재와 마감(Color, Material & Finish, CMF)을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예측 체계를 확장하고 있다. 이는 미래의 디자인이 단순한 색 하나가 아니라 색과 재료, 표면의 질감이 결합된 경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사람들이 무조건 어두운 색을 선호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불안한 시대일수록 안정감 있는 자연색을 찾을 수도 있고, 반대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고 인공적인 색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같은 사회현상이라도 세대와 지역,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색채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색채예측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보다 그 사건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정서가 생활양식과 소비행동을 거쳐 어떻게 색으로 표현되는지를 해석하는 것이다.
CMG가 세계를 아시아·태평양, 유럽, 라틴아메리카, 북미로 구분해 각 지역별로 세 개의 Color Trend Story와 색채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미래의 색은 하나의 세계적 유행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지역의 문화적·사회적·정서적 배경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는 색채 트렌드를 더 잘 예측할 수 있을까
이 점에서 AI는 매우 매력적인 도구가 된다.
검색 데이터, 소셜미디어 이미지, 온라인 쇼핑 정보, 패션 컬렉션, 인테리어 이미지, 자동차 색채, 제품 판매량처럼 과거에는 사람이 일일이 조사해야 했던 방대한 자료를 AI는 매우 빠르게 분석할 수 있다. 수백만 장의 이미지에서 특정 색의 출현 빈도를 비교하거나 특정 색이 언제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는지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최근 몇 년 동안 베이지의 비중이 줄어들고 녹색 계열이 증가하고 있는지, 채도가 낮은 색에서 선명한 색으로 변화가 나타나는지, 패션에서 시작된 색이 자동차나 인테리어로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는지를 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다.
실제로 CMG도 2026년 ‘AI and The Future of Color Forecasting’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 전문가의 조사 기반 예측 방법과 AI가 생성한 예측을 비교하고 있다. CMG가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질문도 매우 직접적이다. 색채예측 전문가를 AI가 대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측’과 ‘해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AI는 패턴을 발견하지만 그 색의 의미까지 아는 것은 아니다
AI가 가장 잘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다. 어떤 색이 얼마나 자주 등장했고, 검색량이 얼마나 증가했으며, 특정 디자인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어떻게 확산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AI에게 매우 적합한 작업이다.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까운 미래에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색을 확률적으로 제안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색채 트렌드는 과거의 연장선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쟁, 기후위기, 경제불안, 새로운 기술, 세대교체, 정치적 사건, 문화적 운동과 같이 예상하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의 감정과 가치관이 변화하고 색의 의미도 함께 달라진다.
더 어려운 문제는 같은 색조차 시대와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녹색은 자연과 생태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기술산업에서는 지속가능성을 표현하는 마케팅 언어가 되기도 한다. 핑크는 특정 시대에는 여성성을 상징했지만 다른 세대에서는 젠더 규범에서 벗어나는 색이 될 수 있다. 베이지와 회색 역시 단순한 중성색이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과 절제를 추구하는 생활태도와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색채예측에서 어려운 질문은 “어떤 색이 증가하고 있는가”보다 “왜 지금 사람들이 이 색을 필요로 하는가”에 가깝다. CMG가 AI 기반 예측의 가능성을 검토하면서도 인간의 통찰, 문화적 이해와 맥락적 판단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CMG는 색채예측의 신뢰성이 초기 조사와 현장 관찰, 그리고 인간의 해석에 크게 의존한다고 설명한다.
트렌드의 색은 발견되기도 하지만 만들어지기도 한다
색채예측에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특성이 있다. 예측기관이 미래의 색을 발표하면 기업과 디자이너가 이를 참고해 제품을 개발한다. 자동차회사와 가전회사, 패션 브랜드, 화장품회사, 인테리어 기업이 비슷한 방향의 색을 채택하면 시장에는 실제로 그 색이 많아진다.
결국 색채예측은 미래를 관찰하는 행위인 동시에 미래에 영향을 주는 행위가 된다.
CMG의 색채 선정 과정에서도 한 사람이 미래의 색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제안한 색과 Color Story를 검토하고, 색채군의 방향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색,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를 대표할 수 있는 색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좁혀간다. 기존 CMG의 Key Color 선정 과정에서도 참가자들의 색 제안 빈도, 주요 색채군, Color Story와의 관계 등을 검토하고 전문가 토론과 투표를 거치는 방식이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색채예측은 순수한 통계적 예측이라기보다 미래 사회에 대한 공동의 시나리오를 색으로 표현하는 과정에 가깝다.
AI 시대에는 색채전문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색채전문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앞으로는 수천 장의 이미지를 사람이 직접 분류하거나 색상 출현 빈도를 수작업으로 계산할 필요가 줄어들 것이다. 자료수집과 패턴 탐색, 색채 데이터 분석에서는 AI가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대신 인간 전문가의 역할은 데이터를 읽는 일로 이동한다.
AI가 “청록 계열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알려준다면 색채전문가는 그 이유를 질문해야 한다. 생태적 가치의 확산 때문인지, 디지털 환경에 대한 피로 때문인지, 특정 세대의 취향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몇몇 대형 브랜드의 영향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 같은 데이터가 다른 의미를 가질 가능성도 판단해야 한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이 있다. 바로 아직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작은 변화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진짜 새로운 트렌드는 처음부터 거대한 데이터로 나타나지 않는다. 작은 전시회, 신진 디자이너의 작업, 한 도시의 거리문화, 특정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와 이미지처럼 매우 작은 신호에서 시작할 수 있다.
데이터가 많아진 뒤에는 AI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 있는 변화인지 일시적인 현상인지를 초기 단계에서 알아차리는 것은 여전히 관찰과 문화적 해석의 영역에 가깝다.
미래의 색을 ‘맞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
결국 “AI는 미래의 색을 예측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단순히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하기 어렵다. AI는 이미 색채예측을 상당히 잘할 수 있다. 특히 대규모 데이터에서 변화의 방향을 발견하고 여러 가능성을 빠르게 비교하는 능력은 앞으로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색을 이해한다는 것은 데이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색을 찾아내는 것과 다르다. 색은 인간의 감정과 기억, 문화와 가치관을 담는다. 어떤 색이 등장했다는 사실보다 왜 그 사회가 그 색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미래의 색채예측은 아마도 ‘인간 대 AI’의 경쟁으로 발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AI는 거대한 데이터 속에서 변화의 신호를 발견하고, 인간은 그 변화가 사회와 문화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판단한다. 두 능력이 결합될 때 색채예측은 단순히 다음 유행색을 맞히는 기술에서 벗어나 다가오는 사회의 정서와 가치 변화를 색을 통해 읽는 방법이 될 수 있다.
2028년의 색을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도 미래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 미래의 색을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 우리 주변에서 시작되고 있는 작은 변화를 관찰하고, 그 변화가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를 색이라는 언어를 통해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색채예측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미래를 정확하게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현재의 변화 속에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미래를 발견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참고·출처
Color Marketing Group. 2026 Virtual Reveal: CMG’s 2028+ World Color Forecast™ at Your Fingertips. 2026년 8월 27~28일.
Color Marketing Group. Forecasting. Color, Material & Finish Trends and Forecasting Process.
Color Marketing Group. Introducing CMG’s 2026+ Key Colo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