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의 미학 – 색이 달라졌을 뿐인데
한때 모든 화장지는 하얗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인식 아래 생산되었다. 소비자는 표백된 새하얀 종이에 익숙했고, 그 색은 위생과 청결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독일의 슈퍼마켓 진열대 한편에는 갈색이나 회색을 띠는 화장지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은 변화는 단순히 미적 취향의 전환이 아니라, 생산 방식의 변화와 소비자의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다. 욕실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조차,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를 다시 묻게 된다.
색이 말하는 것 – 표백하지 않은 진심
브라운 화장지는 재활용 과정의 투명성을 그대로 품고 있다. 과거에는 신문지나 인쇄물이 주된 원재료였다면, 오늘날에는 택배 상자 같은 판지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색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화학적 표백을 거치지 않은 종이는 자연스러운 갈색이나 회색을 띠며, 그 자체로 ‘가공되지 않은 정직함’을 전달한다.
이 색은 더 이상 기능을 위한 장식이 아니다. 오히려 환경을 고려한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사용자에게는 작지만 분명한 윤리적 만족감을 남긴다.
흰색의 시대에서 브라운의 시간으로
오랫동안 흰색은 깨끗함과 안심의 상징이었다. 그에 비해 브라운은 투박하고 거칠다는 인식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브라운은 새로운 의미를 얻고 있다.
그것은 지속가능성을 상징하는 색이며, 환경을 고려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조용한 언어다. 소비자는 더 이상 무조건적인 ‘흰색의 미학’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색의 사회적 상징이 바뀌고 있는 지금, 화장지의 색조차도 삶의 방향을 드러내는 지표가 되어간다.
감촉보다 가치 – 달라진 기준
표백을 생략한 화장지는 촉감에서 다소 거칠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제품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소재나 제작 방식에서 다양한 시도를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소비자의 기준이다. 부드러움 그 자체보다, 어떤 철학 아래 만들어졌는지를 우선시하는 태도. 삶의 가장 일상적인 선택에서 조차 우리는 ‘감각’보다 ‘맥락’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삶의 태도가 된 색
오늘날 브라운 톤의 화장지는 단지 생활용품을 넘어선다. 그것은 과하지 않은 방식으로 소비자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하나의 장면이 된다.
표백하지 않은 색과 투박한 질감 속에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의지가 있다. 더 많이 가공하지 않고, 덜 손댄 것의 진실함을 믿는 태도. 욕실 안의 조용한 존재는 사용자 대신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불필요한 것을 줄이며, 환경과 삶에 대한 책임을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고.
그렇기에 색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색은 이제 메시지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우리가 어떤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조용히 말해준다.
출처 : www.t-online.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