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온 색이라고 하면 흔히 베이지, 회갈색, 옅은 녹색처럼 채도가 낮고 차분한 색을 떠올린다. 건축과 인테리어에서도 ‘자연 친화적 색채’라는 말은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는 색, 주변 환경에 조용히 스며드는 색을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자연색의 해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흙과 식물, 광물과 물에서 가져온 색을 사용하되, 이전보다 깊고 선명하게 표현하는 ‘어시 바이브런시(Earthy Vibrancy)’가 2026년의 주요 색채 경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Good Housekeeping》에 실린 「‘Earthy Vibrancy’ Is Poised to Become 2026’s Defining Color Trend」는 어시 바이브런시를 자연에서 유래한 색에 일정한 강도와 생동감을 더한 색채 경향으로 소개했다. 대표적인 색에는 깊은 테라코타, 풍부한 황토색, 올리브와 이끼색, 탁한 청색, 녹슨 금속을 연상시키는 적갈색, 짙은 자주색이 포함된다. 이 용어를 제안한 디자이너 배리 보들런(Barry Bordelon)과 조던 슬로컴(Jordan Slocum)은 이러한 색이 자연에 기반을 두면서도 모험적이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고 설명한다.
어시 바이브런시는 단순히 기존 흙빛의 채도를 높인 유행색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흰색과 회색, 베이지색을 중심으로 전개된 미니멀리즘에 대한 피로가 자리한다. 무채색 공간은 정돈되고 넓어 보이지만, 반복될수록 장소의 개성과 생활의 흔적을 약화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안정감은 유지하면서도 감각적 깊이와 표현성을 지닌 색을 찾기 시작했다. 어시 바이브런시는 중성색의 편안함과 유채색의 생동감을 결합한다. 기사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 린다 헤이슬렛(Linda Hayslett)은 이를 ‘중성색의 진화’로 설명한다. 자연의 차분함을 지니면서도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정도의 색채 강도를 갖추었다는 의미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볼 문제는 자연색과 저채도의 관계다. 자연은 실제로 낮은 채도의 색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햇빛을 받은 황토와 붉은 점토, 가을의 단풍, 젖은 이끼, 깊은 바다, 광물의 결정, 꽃과 열매에는 강렬하고 선명한 색이 존재한다. 우리가 자연색을 차분한 베이지와 녹색으로 한정해 온 것은 자연 그 자체의 특성이라기보다 자연을 바라보는 현대 디자인의 관습에 가깝다.
특히 환경색채에서는 ‘주변과의 조화’를 강조하면서 낮은 채도를 안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다. 건축물의 외벽이나 공공공간에 선명한 색을 사용하면 주변 경관을 해치거나 시각적 피로를 유발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화는 색이 약해야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색의 면적과 위치, 재료의 질감, 빛의 변화, 인접 색과의 관계를 조절한다면 비교적 선명한 자연색도 환경과 충분히 어울릴 수 있다.
테라코타색은 넓은 면에 사용하더라도 벽돌이나 흙벽의 물성과 결합하면 안정감을 준다. 짙은 올리브색과 이끼색은 목재나 석재와 함께 사용할 때 식생의 연속성을 형성한다. 탁한 청색은 회색보다 더 풍부한 깊이를 제공하면서도 하늘과 물의 이미지를 공간에 끌어들인다. 짙은 자주색이나 적갈색은 소규모 공간이나 가구, 문, 안내 요소에 적용하면 차분한 배경 안에서 시각적 중심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개별 색의 채도보다 색이 놓이는 환경과 비례, 재료, 빛의 관계다.
어시 바이브런시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변화는 자연성이 더 이상 소극적인 분위기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연 친화적 공간도 활기차고 개성적일 수 있으며, 흙빛도 충분히 현대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최근의 디자인 매체들은 황토, 올리브, 버건디, 점토색과 같은 따뜻하고 깊은 색이 공간에 생활감과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면서도 기존의 무채색보다 풍부한 인상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다만 어시 바이브런시를 단순한 유행색 조합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자연색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색을 한 공간에 과도하게 사용하면 시각적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선명한 색을 작은 장식물에만 제한하면 기존의 베이지색 공간에 일시적인 강조색을 추가하는 수준에 머문다. 자연색의 새로운 가능성을 살리려면 색을 표면 장식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와 기능을 조직하는 요소로 보아야 한다. 넓은 배경색, 중간 면적의 보조색, 작은 면적의 강조색 사이에 위계를 만들고, 목재·석재·금속·직물 같은 재료의 고유색과 함께 계획해야 한다.
어시 바이브런시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자연을 무채색에 가까운 고요한 이미지로만 소비해 온 태도에서 벗어나, 자연이 가진 생명력과 다양성을 공간에 다시 불러들이려는 움직임이다. 자연색은 반드시 낮은 채도일 필요가 없다. 환경과 관계를 맺고 재료와 빛에 반응하며 장소의 성격을 드러낸다면, 선명한 흙빛도 충분히 자연스럽다. 앞으로의 환경색채에서 중요한 것은 색을 얼마나 억제했는가가 아니라, 그 색이 장소의 조건과 사람의 경험에 얼마나 설득력 있게 연결되어 있는가이다.
참고문헌
Millar, L. (2025, December 27). “‘Earthy Vibrancy’ Is Poised to Become 2026’s Defining Color Trend.” Good Housekeeping.
Moorman, E. (2026). “So You Like Earthy Colors But Don’t Want Your Home to Look Drab? Meet 2026’s Rising Trend-‘Earthy Vibrancy’.” Homes & Gardens.
Lyon, S. (2025, December 8). “This Cozy Color Pairing Will Be in Every Home in 2026, Designers Say.” The Spru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