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색은 감정을 움직이는가

꽃의 색은 정원의 분위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빨강은 활기차고 파랑은 차분하다’는 식의 단순한 색채 공식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색에 대한 반응에는 색상뿐 아니라 채도와 명도, 개인의 취향과 경험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왕립원예협회(RHS)와 영국·스위스 연구진은 꽃 색에 대한 선호가 감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11,569명을 조사했다. 연구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영국 서리주의 RHS 위슬리 정원(RHS Garden Wisley)을 방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36개 색채 범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꽃 색을 고른 뒤, 기쁨부터 혐오까지 제시된 20가지 감정 가운데 선택한 색과 가장 밀접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을 응답했다.

전체 조사에서 보라색 계열은 26.67%로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으며, 빨강이 25.24%로 뒤를 이었다. 보라색은 세 계절에 걸쳐 가장 선호되었고 겨울에만 빨강이 앞섰다. 계절에 따라 꽃의 종류와 주변 경관이 달라져도 일부 색채 선호와 감정의 관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 것이다.

색상보다 더 분명한 차이를 만든 요소는 색의 강도였다. 선명하고 채도가 높은 색은 전체 선호의 60%를 차지했으며, 탁한 색 17.9%, 어두운 색 12.39%, 밝고 연한 색 7.97%보다 높은 비율을 보였다. 색상과 색조를 함께 구분했을 때는 선명한 빨강이 12.97%로 가장 높았고 선명한 노랑이 11.90%로 뒤를 이었다. 정원에서 노란색의 선호도가 낮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채도가 높은 노랑은 강한 긍정적 반응과 연결되었다.

감정의 내용도 색채 특성에 따라 달라졌다. 채도가 높은 노랑과 주황, 빨강은 기쁨과 흥분, 활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파랑과 남색은 평온함과 이완, 보라색은 만족감, 빨강은 사랑과 감탄을 떠올리게 했다. 회색은 긍정성과 감정 강도가 모두 가장 낮았다. 같은 파랑이라도 색이 밝고 탁한지, 어둡고 선명한지에 따라 차분함뿐 아니라 흥미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다만 이 연구는 특정한 꽃 색을 본 뒤 감정이 실제로 어떻게 변했는지를 측정한 실험이 아니다. 참여자가 선호하는 색을 선택하고 그 색과 연관된 감정을 응답한 조사이므로, 색이 감정을 직접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 없다. 조사 대상도 RHS 정원 방문자였기 때문에 결과를 모든 문화와 연령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꽃의 형태와 향기, 식재 밀도와 주변 식생 같은 조건도 실제 정원 경험에 영향을 준다.

연구 결과는 정원 색채계획에서 색상만 정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활동과 교류를 유도하는 공간에는 채도가 높은 따뜻한 꽃 색을 활용하고, 휴식과 회복을 위한 공간에는 밝거나 탁한 파랑과 보라 계열을 사용할 수 있다. 학교와 병원, 도서관의 치유정원에서는 이용자의 연령과 문화적 배경, 선호색을 함께 조사해야 한다. 좋은 정원은 색의 고정된 상징을 적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이용자가 어떤 감정을 필요로 하는지 살피고 색상·채도·명도·식물의 형태를 세심하게 조율한 환경에 가깝다.


출처 Sachs, A. L., Larsen, E. K., Chalmin-Pui, L. S., Jonauskaite, D., Mohr, C., Christodoulou, M., Cameron, R. W., & Griffiths, A. (2026). Flower power: How favourite flower colours shape how we feel. Acta Psychologica, 269, Article 107507.   왕립원예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