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꼬리실잠자리(Ischnura elegans)의 몸에서는 선명한 파랑과 초록을 볼 수 있다. 이 색은 보는 방향이 달라져도 크게 변하지 않으며, 흐린 빛에서도 비교적 또렷하게 보인다. 실잠자리가 단순히 파란색이나 초록색 색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네게브 벤구리온대학교(Ben-Gurion University of the Negev)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실잠자리의 색은 색소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표피 속 미세한 입자가 빛을 반사하는 구조와 노란색 색소가 함께 작용한 결과다.
색소가 만드는 색과 구조가 만드는 색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색은 대체로 물질이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고 나머지를 반사하면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나뭇잎의 엽록소는 주로 붉은빛과 푸른빛을 흡수하고 녹색 계열의 빛을 반사한다. 우리는 반사된 빛을 보고 나뭇잎이 초록색이라고 느낀다. 물감과 염료, 인쇄 잉크도 이와 비슷한 원리로 색을 만든다.
그러나 자연에는 색소가 아니라 물질의 미세한 구조가 만드는 색도 있다. 이를 구조색(structural color)이라고 한다. 물질 내부에 빛의 파장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작은 구조가 있으면, 빛은 이 구조와 만나 특정 방향으로 반사되거나 흩어진다. 이때 특정 파장대의 빛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파랑이나 초록과 같은 색이 보인다.
비눗방울과 기름막에서 여러 색이 나타나는 현상, 공작의 깃털과 나비의 날개가 화려하게 빛나는 현상도 구조색의 사례다. 다만 구조의 배열 방식에 따라 색의 특성은 달라진다. 규칙적인 구조가 만드는 색은 보는 각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지만, 불규칙한 구조가 만드는 색은 여러 방향에서 비교적 일정하게 보인다.
실잠자리의 표피에 숨은 작은 구슬
연구진은 실잠자리의 표피를 극저온 주사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표피 안에서 나노미터 크기의 구형 입자들이 발견됐다. 이 입자들은 바둑판처럼 규칙적으로 놓여 있지 않고, 크기와 위치가 조금씩 다른 상태로 모여 있었다.
이처럼 미세한 구형 입자가 불규칙하게 모여 빛을 산란시키는 구조를 광자유리(photonic glass)라고 한다. 일반 유리가 빛을 통과시키는 물질이라면, 광자유리는 미세한 입자 배열을 이용해 특정 파장의 빛을 선택적으로 반사하는 광학 구조다.
실잠자리의 표피에 들어온 빛은 수많은 구형 입자와 만난다. 입자들은 그중 일부 파장을 강하게 산란시키며, 이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 파랑이나 초록으로 보인다. 입자의 크기와 굴절률이 달라지면 산란되는 빛의 파장도 달라지므로 몸 색도 변할 수 있다.
크기가 다른 입자는 왜 색을 흐리게 하는가
광자유리가 선명한 색을 만들려면 여러 입자가 비슷한 파장대의 빛을 반사해야 한다. 그런데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입자는 공장에서 생산한 구슬처럼 크기가 완전히 같지 않다. 큰 입자와 작은 입자가 섞여 있으면 각각 다른 파장의 빛을 반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입자는 파란빛을, 다른 입자는 푸른빛 주변의 녹색이나 보라색 빛을 함께 반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러 파장이 섞이면 색의 경계가 흐려지고 채도가 낮아진다. 파란색 물감에 회색이나 다른 색이 조금씩 섞이면서 색이 탁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실잠자리처럼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입자들이 모여 있으면서도 선명한 색을 만드는 현상은 일반적인 광학 원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실잠자리가 입자의 크기를 완벽하게 통일하는 대신, 입자의 다른 성질을 함께 바꾸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입자가 커지면 굴절률은 낮아진다
실잠자리의 첫 번째 발색 원리는 입자의 크기와 굴절률을 반대 방향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굴절률은 빛이 어떤 물질을 통과할 때 속도와 방향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굴절률이 높을수록 빛은 물질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일반적으로 구형 입자가 커지면 더 긴 파장의 빛을 반사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같은 재료로 만든 입자의 크기만 달라진다면 입자마다 반사하는 색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실잠자리의 표피에서는 입자가 커질수록 내부 밀도와 굴절률이 낮아졌다.
크기가 커져 반사 파장이 달라지려는 효과를 낮아진 굴절률이 반대 방향에서 상쇄하는 것이다. 작은 입자는 비교적 높은 굴절률을 가지고, 큰 입자는 낮은 굴절률을 가진다. 입자의 크기는 서로 달라도 최종적으로 산란시키는 빛의 파장은 비슷해진다.
연구진은 이러한 관계를 ‘구조적 분산(structural dispersion)’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입자의 한 조건이 달라질 때 다른 조건도 함께 변해 결과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자기 보정 방식이다. 실잠자리는 모든 입자를 똑같이 만드는 대신, 서로 다른 입자들이 비슷한 색을 만들도록 광학적 성질을 조절한다.
노란색 색소가 파랑과 초록을 선명하게 만든다
실잠자리의 색을 선명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구형 입자 안에 들어 있는 노란색 프테리딘(pteridine) 색소다. 노란색 색소가 어떻게 파랑과 초록을 더 또렷하게 만들 수 있을까.
광자유리는 원하는 파장의 빛만 정확하게 반사하지 않는다. 파란빛이나 녹색빛을 중심으로 산란시키면서도 그 주변의 불필요한 파장을 함께 반사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파장의 빛이 섞이면 색은 밝아질 수 있지만 순도는 떨어진다. 흰빛이 섞인 파랑이 옅고 탁하게 보이는 것과 같다.
노란색 프테리딘 색소는 이때 광학 필터 역할을 한다. 구조에서 산란된 빛 가운데 색을 흐리게 만드는 짧은 파장대의 빛을 흡수하고, 주된 파랑이나 초록은 상대적으로 강하게 남긴다. 구조가 필요한 색을 만들어내면 색소는 그 주변의 불필요한 빛을 걸러내는 셈이다.
따라서 실잠자리의 몸 색은 구조색과 색소색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세한 입자가 특정 파장의 빛을 산란시키고, 노란색 색소가 혼합된 빛을 걸러내면서 높은 채도의 파랑과 초록이 완성된다.
성장하면서 초록에서 파랑으로 변하는 이유
푸른꼬리실잠자리는 성장 과정에서 몸 색이 초록에서 파랑으로 점차 변한다. 연구진이 약 100마리의 실잠자리를 분석한 결과, 이러한 변화는 표피 속 구형 입자의 성장과 관련되어 있었다.
어린 개체에서는 입자의 크기와 굴절률이 초록 계열의 빛을 반사하는 조건을 만든다. 성장하면서 입자는 커지고 내부의 밀도와 굴절률은 낮아진다. 이에 따라 주로 반사되는 빛의 파장도 달라지면서 몸 색이 초록에서 파랑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도 입자의 크기 차이는 그대로 존재한다. 하지만 크기와 굴절률이 함께 조절되기 때문에 색은 쉽게 탁해지지 않는다. 노란색 색소 역시 불필요한 빛을 흡수해 성장 단계마다 나타나는 색의 채도를 높인다.
이러한 결과는 실잠자리의 색이 표면에 고정된 장식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몸이 성장하고 표피의 미세구조가 달라지면서 색도 함께 형성된다. 색은 생물의 발달 과정에서 계속 변화하는 물질적 특성이다.
자연은 불완전함을 제거하지 않고 조절한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실잠자리가 완벽하게 균일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구형 입자들은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인 제조 방식이라면 선명한 색을 얻기 위해 크기가 다른 입자를 제거하고 균일한 입자만 남기려 할 것이다.
실잠자리는 다른 방식을 사용한다. 입자의 크기 차이를 없애지 않고, 크기가 달라질 때 굴절률도 함께 달라지도록 한다. 여기에 노란색 색소를 추가해 남아 있는 불필요한 빛을 걸러낸다. 재료의 불완전함을 제거하기보다 여러 요소가 서로 보완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 원리는 자연의 색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자연의 정교한 색이 반드시 완벽하게 규칙적인 구조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규칙한 구조에서도 각 요소의 관계를 조절하면 선명하고 안정된 색을 얻을 수 있다.
지속가능한 색채 재료의 가능성
산업에서 사용하는 많은 색은 합성 안료와 염료로 만들어진다. 이들 재료는 비교적 저렴하게 일정한 색을 낼 수 있지만,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유해물질이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자외선과 열에 장기간 노출되면 화학적 성분이 변해 색이 바래기도 한다.
구조색은 물질의 화학적 성분보다 미세구조를 통해 색을 만들기 때문에 기존 색재료를 보완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실잠자리처럼 유기물로 이루어진 불규칙한 입자를 이용하면서도 높은 채도를 얻을 수 있다면, 정밀한 나노구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과 공정을 줄일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원리가 화장품과 섬유를 비롯한 광학 재료 개발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생물의 발색 원리를 발견한 것과 이를 산업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실제 적용을 위해서는 원하는 색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는지, 햇빛과 습도에 견딜 수 있는지, 대량생산이 가능한지 등을 더 검토해야 한다.
색은 물질과 구조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실잠자리의 파랑과 초록은 색을 하나의 색소나 고정된 물질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구형 입자의 크기, 밀도와 굴절률, 입자 사이의 배열, 노란색 색소의 흡수 작용이 함께 연결되어 하나의 색을 만든다.
인간은 실잠자리의 몸을 보고 파랑이나 초록이라는 하나의 색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그 색의 내부에서는 빛의 산란과 흡수, 입자의 성장과 물질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하나의 색은 여러 물리적·생물학적 과정이 균형을 이룬 결과다.
실잠자리의 구조색은 자연의 색과 형태를 그대로 모방하는 데서 나아가, 색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살펴보게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선명한 파랑의 외형보다 크기가 다른 입자와 색소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자연은 모든 재료를 균일하게 만드는 대신, 각 요소의 특성을 조절해 안정된 색을 형성한다. 실잠자리의 색은 완벽한 재료가 아니라 여러 요소의 정교한 상호작용에서 만들어진다.
출처: Tali Lemcoff et al., “Damselflies overcome color saturation barriers of photonic glasses via pigment loading and refractive index modula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26. Phys.org
사진 출처: 이안 커크, 푸른꼬리실잠자리 암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