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mushroomcoloratlas.com / textiles-werken.de]


버섯을 떠올리면 갈색이나 흰색이 먼저 생각난다. 실제로는 노랑과 주황, 빨강에서 보라와 녹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을 얻을 수 있다. 일부 버섯에서 추출한 색소는 오래전부터 양모와 같은 천연섬유를 염색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회화와 인쇄, 지속가능한 색채디자인을 위한 재료로도 관심을 받고 있다.

2026년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오리건주 멀리노(Mulino)에서 열린 래디컬 마이콜로지 컨버전스(Radical Mycology Convergence)에서는 버섯 염료를 안료로 만드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자연염색 스튜디오 블룸 앤 다이(Bloom & Dye)를 운영하는 디자이너이자 예술가 줄리 빌러(Julie Beeler)는 26일 버섯에서 염료를 추출하는 방법을 시연하고, 27일에는 추출한 염료를 분말 안료로 만드는 과정을 소개했다.

이렇게 만든 안료는 결합재와 혼합해 물감이나 잉크로 사용할 수 있다. 버섯에서 얻은 색을 섬유뿐 아니라 종이와 캔버스 등 다양한 표면에 적용할 수 있어 색채디자인에서의 활용 범위도 넓어진다.

염료에서 안료로, 색을 사용하는 방법의 변화

염료(dye)와 안료(pigment)는 모두 색을 내는 재료이지만 물리적 성질과 사용 방법이 다르다. 염료는 일반적으로 물이나 다른 용매에 녹아 섬유와 같은 재료를 착색한다. 반면 안료는 사용하는 매체에 녹지 않는 미세한 입자로 존재하며, 결합재와 혼합해 물감이나 잉크로 사용한다.

버섯에서 추출한 염료를 안료로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레이크 안료(lake pigment) 제조법이다. 염료 용액에 알루미늄 등의 금속염을 첨가하고 적절한 조건에서 반응시키면 색소가 불용성 물질로 침전된다. 침전물을 여과하고 세척한 뒤 건조하면 분말 형태의 안료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안료에 아라비아고무나 다른 결합재를 혼합하면 수채화 물감이나 잉크를 제작할 수 있다.

레이크 안료는 오랜 역사를 지닌 색채 재료다. 고대부터 식물과 동물에서 추출한 유기 염료를 불용성 안료로 만들어 회화와 장식에 사용했다. 꼭두서니에서 얻은 적색 염료나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코치닐 색소를 안료로 만드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버섯 염료의 안료 전환 역시 이러한 전통적인 제조 원리를 활용한다.

안료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금속염의 종류와 반응 조건, 용액의 산도에 따라 색상과 채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일정한 색상을 얻으려면 색소 추출부터 침전과 건조에 이르는 제조 조건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버섯에서 얻을 수 있는 색

버섯의 색은 종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일부 종에서는 선명한 노랑과 주황을, 다른 종에서는 적색이나 보라색 계열의 색소를 얻을 수 있다. 같은 버섯을 사용하더라도 추출 온도와 시간, 용액의 산도, 매염제의 종류에 따라 최종 색상이 달라진다. 북미균학회(North American Mycological Association)에서도 버섯의 종류와 매염 조건에 따라 다양한 색을 얻을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줄리 빌러는 이러한 버섯의 색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기록해 왔다. 그가 제작한 《버섯 색채 아틀라스(The Mushroom Color Atlas)》는 버섯에서 추출한 색을 색견본으로 정리한 프로젝트다. 버섯의 종류와 염색 조건에 따른 색상 변화를 기록하여 자연 유래 색소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색채 자료는 자연염색뿐 아니라 색채디자인에서도 활용 가치가 있다. 특히 색상과 재료의 관계를 연구하거나 생물 유래 색소를 제품에 적용할 때 기초 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에서 얻은 색은 원료의 상태와 제작 환경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기 쉽다. 같은 종류의 버섯이라도 생육 환경이나 채집 시기에 따라 색소의 함량이 달라질 수 있으며, 추출과 안료 제조 과정에서도 색차가 발생한다. 일정한 색상을 반복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산업 분야에서는 이러한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표준화가 필요하다.

자연에서 얻은 색과 지속가능성

천연 염료와 안료는 석유화학 기반의 합성 색소를 대체할 수 있는 재료로 관심을 받고 있다. 환경적 영향을 평가하려면 원료의 채집과 재배부터 색소 추출에 필요한 에너지와 물의 사용량, 제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폐수 처리까지 살펴봐야 한다. 버섯 안료를 제품에 적용하려면 색채의 안정성도 확인해야 한다. 빛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때 발생하는 퇴색과 변색, 온도와 습도에 따른 변화, 결합재와의 적합성 등이 주요 평가 항목이다. 염료를 안료로 전환하더라도 모든 색소의 내광성과 내구성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원료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야생 버섯을 대량으로 채집하는 방식은 생태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반면 재배가 가능한 균류를 활용하거나 균사체 배양을 통해 색소를 생산하는 방법은 원료의 안정적인 공급과 품질 관리 측면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 다만 실제 환경적 이점은 재배 방식과 생산 규모에 따라 달라지므로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

최근 지속가능한 CMF(Color, Material, Finish) 디자인에서는 색상과 표면의 시각적 특성뿐 아니라 원료의 출처와 제조 과정, 제품의 수명과 폐기 방법까지 고려하고 있다. 버섯 안료도 이러한 관점에서 검토할 수 있는 생물 유래 색채 재료 중 하나다.

색채디자인에서의 활용 가능성

버섯 염료를 안료로 전환하면 섬유 염색 이외의 분야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분말 안료에 적절한 결합재를 혼합하면 수채화 물감과 인쇄 잉크를 제작할 수 있으며, 입자 크기와 배합 조건에 따라 색의 발색과 표면 질감도 달라진다.

블룸 앤 다이가 진행하는 버섯 염료와 안료 제작 프로그램은 이러한 재료의 특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버섯에서 색소를 추출하고 이를 안료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생물의 색이 회화와 디자인에 사용되는 재료로 가공되는 원리를 살펴볼 수 있다.

산업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회화용 물감과 인쇄 잉크는 물론 인테리어 마감재나 제품 표면에 적용하려면 색상의 재현성과 내광성, 결합재와의 적합성, 생산 비용 등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건축 및 실내 마감재는 장기간 사용되므로 색채의 안정성과 내구성에 대한 요구가 높다.

버섯에서 추출한 염료를 안료로 만드는 과정은 전통적인 천연색소 제조 기술을 현대의 색채디자인에 활용하는 사례다. 생물에서 얻은 색소를 다양한 표면에 적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고, 그 과정에서 색상과 물성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앞으로 버섯 안료의 활용 범위는 색소의 안정성과 생산 기술, 경제성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특히 일정한 품질의 색소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다. 자연의 색을 산업적으로 활용하려면 색상의 다양성뿐 아니라 원료 생산부터 최종 제품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참고 자료
Bloom & Dye, Workshops
North American Mycological Association, Dyes and Papermaking
Radical Mycology Converg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