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어디로 가는가
색은 대개 새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면 색을 정하고, 안료와 염료를 만들어 소재에 적용한다. 제품의 사용이 끝나면 재료는 폐기되거나 재활용되지만, 그 표면에 남아 있던 색은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 물건은 사라져도 그 물건을 이루던 색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2026년 London Design Festival에서 열린 Colour Lab: From Waste to Value는 이 질문을 실제 재료 실험으로 이어갔다. Chroma Waste Lab과 Colour of Saying이 함께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사용이 끝난 직물, 특히 소비 후 면직물을 새로운 안료와 염료, 잉크의 원료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런던 Switchboard Studios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에서 폐직물은 처리해야 할 잔여물이 아니라 다시 색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인 섬유 재활용이 직물을 다시 실이나 섬유로 되돌리는 데 초점을 둔다면, 이 프로젝트는 직물에 남아 있는 색까지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한다. 사용이 끝난 면직물을 분쇄하고, 그 물질을 새로운 pigment, 즉 안료의 원료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프로그램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안료와 잉크, 염색 실험이 공개되었고, 참가자들은 실제 소재 샘플을 통해 폐기물에서 새로운 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프로젝트가 제안하는 것은 단순한 재료 재활용을 넘어선다. 재료와 함께 색도 다시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동안 지속가능한 색채디자인은 친환경 염료, 저독성 안료, 물 사용량을 줄이는 염색 기술, 재활용 소재와 같은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폐직물에 남아 있는 색을 다시 안료로 활용한다면 색채디자인의 출발점도 달라진다.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것뿐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색을 어떻게 다시 사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CMF Future Palettes와 같은 프로그램은 이러한 가능성을 실제 디자인 과정으로 연결한다. 참가자들은 폐직물에서 얻은 안료와 CMF(Color, Material & Finish) 샘플을 이용해 미래의 색채팔레트를 구성한다. 한 번 사용되었던 색이 새로운 제품과 공간의 색채언어로 다시 조합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CMF에서 색과 재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색은 재료의 성질과 생산 과정, 사용 이력과 연결되어 있다. CMF의 C, 즉 Colour는 M(Material)과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 재료의 생애주기와 함께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접근은 circular colour economy, 즉 ‘색채의 순환경제’라는 개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순환경제는 원료를 채취하고 생산한 뒤 사용하고 폐기하는 일방향의 구조에서 벗어나 자원을 다시 순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색채의 순환경제는 여기에 제품 속에 이미 존재하는 색까지 포함한다. 오래된 청바지의 파랑이나 면직물의 빨강과 회색이 폐기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제품의 안료와 색채자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산업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폐직물에서 얻은 안료는 원료의 종류와 사용 이력에 따라 색이 달라질 수 있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색상 재현성, 내광성, 내열성, 안전성과 같은 기술적 기준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표준화된 안료를 사용하는 기존 생산 방식에 비해 품질 관리가 복잡해질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순환재료가 만들어내는 색의 차이를 반드시 결함으로 볼 필요는 없다. 산업사회에서는 정확하게 반복되는 색이 품질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반면 순환재료를 사용하는 디자인에서는 미세한 색차와 흔적이 재료의 출처와 이전 사용의 시간을 드러내는 특성이 될 수 있다. 균일하지 않은 색이 오히려 재료의 이력과 생산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각적 정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의 색채디자인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색채기획에서는 어떤 색이 아름다운지, 어떤 색이 소비자의 선호를 얻는지, 어떤 색이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지가 중요했다. 버려진 직물을 안료로 전환하는 실험은 아직 산업 전반에 적용된 방식이라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단계이다. 그럼에도 이 사례는 지속가능한 색채디자인의 범위를 넓혀준다. 재료의 순환을 넘어 색 자체의 순환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색채디자인은 새로운 색을 선택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색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까지 함께 설계하는 일이 점차 중요해질 것이다.
색을 선택하는 디자인에서 색의 생애를 설계하는 디자인으로. 지속가능한 CMF가 향하고 있는 방향 가운데 하나다.
참고 자료
Meyrick, T., & Kay, J. (2026, September 17–18). Colour without extraction: Towards ethical pigments [Conference paper]. Textile Intersections 2026, Dyson School of Design Engineering, Imperial College London, London, United Kingdom.
Meyrick, T., & Kay, J. (2026, September 17–18). Particle studies: Colour after wear [Exhibition]. Textile Intersections 2026, Dyson School of Design Engineering, Imperial College London, London, United Kingdom.
RMIT University, Chroma Waste Lab. (2026). Circular colour systems and material trials. Chroma Waste Lab Research.
그림 출처 및 설명
Meyrick, T., & Kay, J. (2026, September 17–18). Colour without extraction: Towards ethical pigments [Conference paper]. Textile Intersections 2026, Dyson School of Design Engineering, Imperial College London, London, United Kingdom.
서로 다른 면·린넨 직물에 색을 적용한 후 나타난 색채 차이. 동일한 색소라도 직물의 조직, 두께, 흡수성, 표면 특성에 따라 색의 농도와 균일성이 다르게 나타나며, 이는 색과 재료가 분리될 수 없는 CMF 요소임을 보여준다.